선장 재량에만 달린 '세월호 출항'…허술한 법령이 사고 키워

세월호 침몰사고 일주일째인 22일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운항이 중단된 청해진해운 매표소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해진해운이 운영 중인 연안항로 여객선은 21일부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사진=News1 제공

세월호를 비롯한 국내 대형 여객선의 출항이 사실상 '선장의 손'에 달린 것으로 확인됐다. 수백명의 인원과 수천톤의 화물을 적재한 대형선박의 안전점검이 면밀하게 이뤄지기보다 선장이 제시한 서류만으로 바다에 떠다니는 셈이다.


출항 전 화물적재와 인원점검, 선박의 균형 등 검토가 허술할 수 밖에 없는 현재 법령상 허점에서는 제2의 세월호 사고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박 출항, 어떻게 'go'? 선장이 'ok'하면…
23일 해양경찰청이 고시한 '여객선 안전관리 지침 제3조'에 따르면 선박의 출항 전 점검은 선장에 의해 이뤄진다. 선장은 이를 해운조합 소속 운항관리자의 '서면확인'을 받은 뒤 점검 결과 결함이 있을 경우 시정 조치 후 출항한다.

문제는 운항관리자의 '서면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 운항관리자가 직접 선박을 점검해야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도 운항관리자가 지난 15일 출항 전 탑승 인원과 선원 수, 화물 적재량 등을 '선장'이 기재한 점검보고서만 믿고 승인, 어둠을 뚫고 출발했다.

운항관리자가 배치되지 않은 경우에는 선장이 '통신보고'만 하면 배를 출발시킬 수 있다. 선장이 보고를 하고 출항을 결정하면 별도 점검 없이 선박은 출항할 수 있는 셈이다. 차후에 운항관리사가 점검할 수 있는 규정은 있지만 사고가 났을 경우 대처방안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선박 출항의 관리감독을 책임진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은 '일손 부족' 등을 이유로 출항 전반 과정을 해운 조합에 위임하고 있다. 해운 조합도 운항관리사가 있기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제로 △적재물량의 고정 여부 △선박의 복원력과 균형을 잡는 평형수 체크 △인원 점검 등이 꼼꼼히 이뤄지지 않아 선장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상태다.

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 원장은 "해운 조합이 출항 전 선박을 일일이 나가서 체크하기 보다 하역회사나 해운회사에 위임하고 보고받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출항을 점검하는 해운조합이 연안 해운회사들이 출연해 만든 이익단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출항 과정이 허술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법 22조 2항에서는 여객선의 안전장비와 탑승인원, 화물적재 상태, 안전교육 점검 등 뱃길 안전을 책임지는 운항관리자는 해운조합이 임명한다.

정 원장은 "해운회사는 규정과 관련법이 있지만 같은 비용이라며 매상을 올리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장도 화물 과대 적재 등 해운사의 요구시 이익을 무시할 수 없어 '안전보다는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왜곡된 구조가 애초 사고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 관련당국은 '인원 부족'을 앞세워 책임을 피하고 있다. 특히 해양경찰청은 운항관리자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렵다.

여객선 안전관리 지침 제 3조에 따르면 2개 이상의 해양경찰서 관할구역을 운항하는 여객선의 점검은 해양경찰서장이 관장하고, 운항관리자의 직무수행상태, 자격, 임면 등을 지도 감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찰이 인원도 체크하고 짐도 안전하게 실었는지 검사하면 좋겠지만 공무원 숫자가 적어 매번 그러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1994년 서해페리호 침몰 사건 후 핵심 원인이었던 '과승'이 일반직 공무원들은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 해당 업무가 해경으로 넘어갔다"며 “우리 나라 물동량의 90%가 선박에 의존하는데 일일이 확인하려면 수만명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월호'가 국제선이었다면?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복원성 시험' 자료에 따르면 침몰한 세월호의 적정 평형수 양은 총 2030톤으로 확인됐다. 세월호에 실린 화물 무게가 약 2000톤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전체 화물 중량 3608톤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평행수로 쓰였다고 해도 400톤 가량이 부족했던 셈이다.

해운회사와 해운조합, 해양경찰청,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출항 전 기본적인 평형수 양 점검조차 소홀히 한 것이다. 이외에도 출항 전 점검보고서에서 탑승 인원과 선원 수, 화물 적재량등 모두 엉터리였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제선 선박은 국제 해사 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가 규정하는 60여개 협약에 의해 관리된다. 만일 IMO의 협약을 어기게 되면 해당 항만당국의 '항만국 통제 조치'가 발동해 해당 선박은 출항이 금지된다.

한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선박이 발이 묶이면 하루에 천문학적인 매상이 공중으로 사라지고 적발 건수가 모든 국가에 공유돼 차후 계약 시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해운사는 없을 것"이라며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제선 여객선이나 외양선을 타는 사람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전했다.

윤현규 창원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선박은 화물 적재량이 최대 적재 화물량을 넘지 않더라도 화물의 분포에 따라 복원력이 깨질 수 있다"며 "선박의 종류를 떠나 출발 전 만재흘수선과 복원성 능력을 점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