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엄마시죠?" 새학기 내 아이 개인정보 '줄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주부 이모씨(36)는 며칠전 한 사설학원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아이이름과 학교, 반까지 열거하며 초등학교 1학년때 공부 습관이 중요하니 학습코칭을 받아보라는 것. 같은 반 친구 이름까지 들면서 그 친구들도 상담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본인 휴대폰 번호에 아이이름까지 꿰뚫고 있는 게 찜찜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지만, 학원 관계자는 다른 학부형이 알려줬다며 얼버무렸다.

#학교와 아파트가 많은 서울의 한 학원 밀집 지역.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온갖 학원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들이 즐비하다. 해당 학원을 다닌 아이들의 수상 실적과 함께 상장까지 스캔돼 있는 것도 있다. 상장에는 아이 사진과 이름은 물론 학교·학급까지 기재됐다.


새 학기 들어 학부모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활용한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설학원 등을 통해 유통되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개인정보는 어린 학생들의 안전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와 단속이 필요하다.

2일 교육 및 보안업계에 따르면 학원가 등을 중심으로 학생들과 학부모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하다.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씨는 "처음 들어보는 학원들에서 전화가 와 아이 이름을 대면서 한번 와서 테스트만 받아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제 중학교에 입학해 안그래도 걱정이 많은 시기인데 가볼까 고민도 되고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원의 전화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자녀 교육에 관심이 큰 학부모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마케팅에 활용한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자녀 교육열이 높은 부모들 중 상당수가 학원 정보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부형이나 학생의 정보를 수집·활용하는 것은 학교에서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정보를 수집하려면 반드시 학부모들로부터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규 수업 후 학교에서 진행되는 방과후 교실 등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외부 사설 학원이나 강사 등이 학교와 계약을 맺어 아이들을 교육하기 때문에 이들 업체들도 학생들의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것. 학생 정보를 개별적으로 학원 마케팅에 활용해도 적발이 쉽지 않다.

학부형 최모씨는 "반 아이들 중 일부에게 한 학원에서 단체로 전화가 왔는데 알고 보니 해당 아이들 모두 같은 방과후 교실 수업을 듣고 있었다"며 "해당 업체가 아이들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경우"라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개인정보 유출은 자칫 아동 범죄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

경찰에 따르면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어린 자녀를 납치했다며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 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맞벌이 부부가 늘고, 학교가 끝나도 학원을 도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부모나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부모에게 사기 전화를 거는 범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잇단 대형 개인정보유출 사고로 정부도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학원가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단속이 대형사업자나 전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학원가를 일일이 전수조사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불법으로 의심되는 학원 전화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정보가 도용된 것으로 의심이 될 경우에는 온라인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www.1336.or.kr), 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 포탈(www.privacy.go.kr)이나 전화 118로 신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