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소화불량'에 걸린 대한민국 국회 상임위

국회 일부 상임위 업무 과부하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여야는 19대 국회 후반기부터 미방위와 교문위를 각각 2개씩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의원 숫자가 30명이 넘어가는 상임위도 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면 20명을 넘어선 안 된다."(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15일 라디오 인터뷰)


"교육문화체육관광위가 그렇게 좋은 상임위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50여명의 의원님들이 교문위로 몰렸다. 반면 법사위, 환노위는 지금 한 분 내지 두 분 밖에 안 오셨다."(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14일 당 의원총회)



현행 국회 상임위 체제의 구조적 문제가 19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소관 부처나 업무가 너무 많아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임위가 적지 않고, 이질적 업무가 뒤섞인 상임위에선 여야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도 '일괄처리'나 '패키지딜'을 이유로 쟁점법안과 함께 제동이 걸리는 등 '소화불량' 증세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여야간 원 구성 논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분리 여부가 중심이다. 미방위에서 방송부문을 떼어, 독립된 상임위나 예산결산특위와 같은 상설특위 형태로 만들자는 것이다. 교문위도 분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조직법을 고치지 않고 국회 차원에서 개혁하자면 그이상의 '대수술'은 어려운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계기에 국회 상임위 구조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은 적어도 한 곳의 상임위에 소속돼 소관 법률을 심사하고, 국정감사 등으로 관할 부처를 견제한다. 권력의 축이 행정부에서 입법부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국회 상임위의 비효율적 구조를 방치할 경우 국가 경쟁력도 함께 훼손될 수 밖에 없다.


◇기재위 위상추락·정무위엔 업무 몰려= 19일 현재 상임위 개혁과제로는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와 정무위원회(정무위)의 업무 불균형 △미방위교문위 등 백화점식 상임위 문제 △법사위의 월권 논란이 거론된다.

정무위는 다뤄야 하는 이슈가 너무 많아 고민이다. 국무총리실과 국가보훈처,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국민권익위까지 관할한다. 특히 경제민주화 등 대기업 이슈들이 다루는 공정위, 금융산업 전반을 맡는 금융위 등 현안이 많은 부처가 함께 포진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규제 개혁 업무 콘트롤타워도 총리실이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설립이 검토되는 국가안전처가 예상대로 총리실 산하에 배치될 경우 정무위 소관기관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각 기관별 쟁점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가 벅차다. 소속의원들이 전문성을 쌓기도 어렵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면 공무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고, 법안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과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경제분야 선임부처 격인 기재위는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2008년 MB(이명박)정부 때 금융정책이 기재부에서 신설 금융위원회로 넘어간 것이 결정적 계기다. 금융 법안은 금융위원회를 관할하는 정무위가 맡고,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따로 다루니 기재위에서 기획재정부 업무 중 세제 외에는 다루는 법안이 딱히 없는 셈이다. "대선주자나 중진급이 선호하던 기재위의 인기는 18대 국회로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미방위·교문위 '불량 상임위' 불명예= 미방위는 박근혜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담당 미래창조과학부를 관할하지만, 방송 이슈에 발목이 잡혀 1년 가까이 미래부 관련 법안을 한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소속 의원들의 의욕도 떨어져, 인기 상임위에서 기피 상임위로 위상이 추락했다. 여야가 고성을 지르다 회의가 중단되는 파행도 부지기수다.

교문위는 너무 인기가 좋아 문제다. 교육과 문화, 체육 등 지역구 관리에 도움이 되는 '알째' 업무를 다루기 때문이다. 정원도 30명으로 산업위(30명) 국토위(31명) 등과 함께 '매머드' 급이다. 효율적 회의 진행은 난제가 됐다. 의원당 기본 7분짜리 현안질의라도 한 번 하려면 몇시간을 기다리기 일쑤고, 교육 이슈에 다른 민생법안들이 발목 잡히기도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안마다 존재 이유가 있는데 교문위에선 문화체육 이슈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 월권 논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산안과 결의안 등 일부를 제외하면, 법률안은 상임위→법사위→본회의 코스를 밟는다. 법사위는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를 하도록 돼 있지만 이 규정이 모호해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월 국회에서는 법사위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의 내용을 문제 삼자 담당 위원회인 환노위가 '월권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與野 원구성 협상에 '상임위 개편' 올려야= 여야는 하반기 국회의장단·상임위원장단 구성을 위한 협상중이다. 새누리당은 당초 23일 국회의장단과 함께 뽑기로 한 여당몫 상임위원장을 27일 선출하기로 했다. 그만큼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그사이 상임위 재편문제도 다룬다는 입장이다. 미방위와 교문위를 각각 두개의 상임위로 나누는 방안도 테이블에 올랐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실무협상 결과 양당 내부의견을 수렴, 각자 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내달부턴 하반기 국회가 가동돼야 하는만큼 시일이 촉박하다. '효율화'를 꾀한다면서 여야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늘리려는 것으로 비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미방위를 미래창조과학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로, 교문위를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분리해 상임위를 원활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자는 야당 제의가 있었고 우리도 긍정적 요청을 한 상태"라고 밝혔다. 단 "정부조직 개편 의사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후반기 상임위 배정만 해도 쉽지 않은 숙제인데 구조적인 문제를 같이 풀기가 현실절으로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상임위를 운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전반적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상임위를 부처 개편에 종속해 조정하는 것부터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한구 의원은 상임위 운영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다선 의원들이 상임위를 너무 자주 바꾸고, 위원장도 사실상 순번제로 돌아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미국의 경우 다선 의원이 상임위를 바꾸는 경우는 많이 없고 상임위원장도 마찬가지"라며 "그래야 정책의 수준이 높아지고 국회입법역량이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