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출신 효성家 차남, 왜 '형제의 난'을 일으켰나

조석래 효성 그룹 회장의 3남. 장남 조현준 사장,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사장(왼쪽부터).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후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형과 동생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삼남 조현상 부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의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이른바 '효성가 형제의 난'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조 회장이 항암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탈세와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형제간 형사고발 사태까지 빚어지자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 조현문 전 부사장 고발 건 수사 착수 = 9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10일 효성그룹 계열사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주)신동진의 최현태 대표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조사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트리니티는 조 사장의 지분이 80%, 조 부사장 지분이 10%고, 신동진은 조 부사장의 지분이 80%, 조 사장의 지분이 10%다. 조 전 부사장도 이들 회사 지분을 각각 10%씩 보유 중이다. 조 전 부사장은 이 업체들이 조 사장, 조 부사장 등이 지분을 보유한 다른 계열사를 불법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형제의 난은 지난해 2월 중공업PG(퍼포먼스그룹)를 이끌던 조 전 부사장이 변호사로서의 인생을 살겠다며 자신의 지분을 팔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불거졌다.

당시 조 전 부사장과 계약한 홍보대행사는 "조 전 부사장이 글로벌 무대에서 쌓아온 법률가로서의 전문성과, 효성에서 축적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영 노하우를 접목, (일하게 될) 법무법인 '현'을 국내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법률회사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은 그룹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번창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후계구도 경쟁에서 밀려 회사를 나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가 담당하던 중공업 부문이 공격적인 확장 과정에서 경영이 악화돼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회사 키웠지만 '적자' 때문에 고전 = 효성가(家) 3형제는 모두 미국 동부 명문 대학을 뜻하는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조 전 부사장은 서울대 학사,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스펙'이 탁월하다. 그는 미국 로펌에서 일하다 1999년 효성에 입사했다. 법률 지식을 활용해 2002년 미국 미쉐린으로부터 타이어코드 공장을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에 수완을 발휘했다.

2006년 효성의 중공업 PG장으로 부임해서는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를 글로벌화 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효성의 중공업 부문은 초고압변압기 등 전력 설비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데 조 전 부사장이 경영을 맡을 때까지만 해도 한국전력이 거의 유일한 고객사였다.

한전이라는 단일 회사의 사업 발주 여부에 회사의 매출이 좌우돼 조 전 부사장은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고, 그 결과로 중공업부문 매출은 2007년 9980억원에서 2012년 2조6149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해외에서 사업 수주 경험이 없던 탓에 저가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대로 회사에 부담으로 이어졌다. 중공업부문은 2011년 이래 지속적으로 영업 손실을 보게 됐다.

회사 내부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전략에 대해 회의감을 갖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재계 관계자는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변호사 신분인데다, 사업도 승승장구하던 조 전 부사장은 이 같은 좌절이 뼈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 섬유·정보통신, 산업자재 부문을 맡은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과 조 전 부사장의 갈등도 이 때 싹 튼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은 조 전 부사장이 회사를 나간 이후 지난해 말 조 사장 주도로 중공업 부문 신사업조직을 폐쇄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이 물러난 이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검찰의 수사가 이뤄졌다. 조 전 부사장은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토요타 등 4개 회사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법적인 수단으로 효성을 압박했다. 가족과의 관계도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을 만나려 했지만, 조 전 부사장이 해외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만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조현문 "'저들'이 새 출발하려는 나를 방해" = 조 전 부사장은 회사의 부정을 시정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번 고발 건에 대해 홍보대행사를 통해 "그룹 내의 불법행위를 바로 잡고 진실을 밝히려고 해왔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룹을 떠나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하지만 저들은 한쪽에서는 이러한 나의 진의를 왜곡하고 음해해 왔으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등 내가 정당하게 독립해서 바르게 새출발하는 삶을 살려는 것을 방해하고 나를 저들의 불법행위에 얽어매려 했다"고 덧붙였다.

조 전 부사장은 "그 동안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그리고 일반인들이 상상 할 수도 없는 음해와 모욕을 당해 왔다"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번에 모든 불법행위들을 바로잡고 정리하려 이번 고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가 아프고 회사가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재계 전체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