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떠나고 큰빗이끼벌레 남아…4대강 사업이 남긴 상처들

9일 찾은 금강의 흐름을 막고 있는 공주보의 모습/ 사진=김유진 기자

충남 공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볼 수 있는 금강 줄기 한 가운데는 나무들이 빽빽이 심겨진 하중도가 하나 있다. 오후가 되면 이 작은 섬의 나무들은 가지마다 하얗게 백로들이 앉아 쉬어가는 쉼터가 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많던 백로들은 섬을 떠나버렸다. "4대강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 소음과 오염에 놀란 백로들이 서식지인 이곳을 다 떠났죠."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환경문제를 다루는 기자로 활동하며 큰빗이끼벌레 문제를 최초로 발견하고 보도한 김종술 환경운동연합 물환경특위 위원의 말이다.


9일 찾은 금강은 아파하고 있었다. 금강 본류 줄기의 가장자리에 난 수풀마다, 설치된 시설물마다 거대한 큰빗이끼벌레들이 붙어있었다. 4대강사업국민검증단과 기자들이 온다는 소식에 수자원공사 직원들이 부랴부랴 다니며 큰빗이끼벌레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여전히 큰빗이끼벌레는 중간중간 남아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황폐해진 금강에서 서식 중인 큰빗이끼벌레/ 사진=김유진 기자

요트선착장 기둥에 2m 정도 길이로 붙어서 서식중인 큰빗이끼벌레를 떼어 만져봤다. 생각보다 단단한 유기체지만 겉은 미끌미끌하고 속의 투명한 젤은 결 모양으로 찢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이 빠져나가면서 크기가 줄어들기도 했다. 벌레를 만진 후 손을 코로 가져가보니 동물이 썩는듯한 구린내가 진동을 했다.

강물은 조금만 더워지면 금세 '녹조라떼'로 변해버릴 녹조의 씨앗들이 둥둥 떠다녀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보로 막아 흐름이 멈춘 강물 위에는 누군가 버린 쓰레기 조각들이 제자리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백제문화권인 공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의자왕의 삼천 궁녀가 물에 뛰어들었던 낙화암 절경이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이곳 금강변에는 이제 요트선착장과 수중공연장이 설치돼 있습니다." 금강변은 원래 새하얀 모래사장과 갈대밭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기로 유명했다.

양흥모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집행위원장은 "금강에 4대강 사업으로 지어진 백제보와 공주보, 세종보가 자연관경을 해칠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 등재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에는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인근에 교량이 설치된 뒤 지정이 철회된 바 있다.

금강은 '물고기 떼죽음' 사태가 발생했던 곳이기도 하다. 2012년 10월 금강 하류에는 29km에 걸쳐 30만마리로 추정되는 통통한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물 위에 떠올라 죽어있었다.

이현정 국토환경연구소 박사는 "명확하게 원인규명이 된 것은 아니나 전문가들이 당시 4대강 사업 이후 강물 바닥에 쌓인 퇴적물이 날씨변화로 뒤집히면서 물 속 용존산소가 한번에 사라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며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여군 규암면 금암리에 지어진 준설토 적치장. 2011년부터 금강에서 퍼올린 모래들을 쌓아두고 있다./ 사진=김유진 기자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4대강 때문에 아프고 힘들다. 금강에서 퍼낸 모래를 쌓아두는 적치장이 있는 충남 부여군 규암면 금암리에 사는 주민들은 분진으로 수년째 빨래도 제대로 널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있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주민들은 생계도 끊길 위기에 처했다. 강물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침식현상이 발생해 농토로 이용하던 하천부지가 무너져내렸다. 이 박사는 "앞으로는 강물 바닥이 뻘층으로 지하수와 차단돼 농업용수를 얻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며 4대강이 가져다 줄 폐해를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