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바뀐 인식…"금리 인하 가능성 열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직후 진행한 브리핑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는 '하방리스크'였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민간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심리 회복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기준금리는 동결했지만 금통위원들 간의 의견은 갈렸다. 지난해 6월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동결 결정 과정에서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놨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한은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에서 3.8%로 하향 조정한 직접적 배경은 세월호의 여파다. 이 총재는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위축에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이 총재는 "세월호 참사의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크고 길어졌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인식은 (경제전망을 발표했던)3개월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 4월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수출증가세가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소득여건과 기업 투자심리 개선으로 내수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p)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이번 경제전망에서는 "세월호 사고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률이 둔화된 후 3분기 이후부터 점차 회복될 것"이라며 다소 비관론을 펼쳤다.

물론 한은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경기충격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직 공식적인 지표가 마련되지 않았지만 한은 내부적으로 파악한 지표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포착됐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성장경로 상으로는 하방리스크가 우세하다는 게 한은의 인식이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하방리스크가 크다고 한 것은 경기심리 침체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함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종전 2.1%에서 1.9%로 낮췄다. 전반적으로 경기에 대한 한은의 인식이 이전보다 나빠진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인하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교롭게 이날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서도 1명의 금통위원이 소수의견을 냈다. 통상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한은은 소수의견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은의 이날 기준금리 동결 결정과 경제전망 하향조정 발표가 나온 직후 전문가들은 향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채권시장도 금리인하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사실상 금리인하를 통한 성장론을 제시한 것도 금리인하쪽에 무게를 싣게 하는 요인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소비위축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고 좋아질 줄 알았던 경기가 당초 예상과 다르게 약화되고 있다"며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를 조금 열어놨다고 보는데, 이런 정책적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