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대는 위스키…'양폭' 시대는 갔다

#국세청 공무원 A씨(53)는 최근 몇 년 새 술자리 문화의 변화를 감지했다. 몇 년 전부터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인 '양폭' 대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대세가 된 것.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자가용 트렁크에 위스키 2~3병씩 넣고 다니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다.


양주 소비와 수입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경기가 수년째 불황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지하경제가 일부 양성화되고 있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위스키에 대한 과세는 해마다 급감하고 있다. 국세청은 2007년 위스키에 대해 총 1770억원의 주세를 부과했지만, 5년 뒤인 2012년에는 285억원을 부과하는데 그쳤다. 6분의 1 이하로 급감한 것이다. 같은 기간 맥주에 대한 주세 부과는 1조1242억원에서 1조3529억원으로, 소주에 대해서는 9097억원에서 1조114억원으로 모두 늘었다.

주류별 출고 동향을 살펴봐도 위스키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22일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사의 2006년 국내 생산분 위스키는 총 1만194㎘였지만, 6년 뒤인 2012년에는 1154㎘에 그쳤다.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소주와 맥주 생산량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위스키 수입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은 해외로부터 총 2만4475㎘의 위스키를 수입했다. 그 이후로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에는 1만7470㎘를 수입하는데 그쳤다. 수입액 기준으로도 같은 기간 2억7029만달러에서 1억8525만달러로 크게 줄었다.


국세청은 지난 2009년부터 위스키 등 양주에 부과되는 세율을 낮춰 소주·맥주와 같은 수준의 주류세를 부과하고 있다. 소주와 맥주, 위스키에 모두 동일하게 주세율 72%, 교육세율 30%, 부가가치세율 10%가 적용된다. 총 세율은 112.96%다. 그럼에도 위스키 소비는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소주와 맥주는 경기변동에 둔감하지만 양주는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소주나 맥주를 찾는다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학과 교수는 "예전부터 경기가 좋지 않으면 양주에 비해 소주와 맥주가 많이 소비됐는데 2010년 즈음부터 경기 상황이 계속 좋지 않다"며 "고용상황도 여의치 않아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기업들도 접대를 줄이면서 고급술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술 문화의 '거품'이 빠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좋다는 해석이다.

홍 교수는 "수입·고급 술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비싼 외국 술을 통한 접대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중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도, 접대비의 투명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