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죽음’…논란 속 타살 가능성에도 무게 실려

(서울=뉴스1) 권혜정,성도현

22일 전남 순천시 서면의 한 밭에서 경찰들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통제하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인근 한 매실밭에서 발견됐다. 유 씨가 지난 5월25일 마지막 은신 장소로 파악된 송치재 별장에서 불과 2㎞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사진= 뉴스1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 전회장의 사인을 '자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타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유 전회장의 시신은 지난달 12일 유 전회장 별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전남 순천시 학구삼거리 한 매실밭에서 발견됐다. 당시 유 전회장의 시신은 반백골화가 80% 가량 진행된 상태로 부패 정도가 심각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시신 발견 당시 사체와 신발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는 점, 먹지도 않은 술병이 빈채로 놓여 있었다는 점, 시신에서 흉기 등 타살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던 점 등은 자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또 측근들이 잇달아 체포·구속되고 검·경의 수사망이 점점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에 압박을 느낀 유 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시신의 상태 등 또다른 정황들로 봤을 때 자살로 단정짓기에는 의문이 남는다.


유 전회장의 시신을 직접 부검한 순천 성가를로병원 이영직 부검의는 이날 뉴스1과 단독인터뷰에서 "지난달 13일 시신 부검 당시 80% 가량이 부패돼 있었다"며 "부검 당시 시신을 확인했을 때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분리돼 완전히 동강나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 두고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가 유 전회장을 살해한 후 매실밭으로 장소를 옮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현장이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점도 그 근거다.

그러나 이 부검의는 "시신이 심하게 부패돼 있어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힘들었다"며 "구더기가 목 인대 부분을 갉아먹으면 분리될 수도 있어 타살이라고 확정짓기도 어렵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경찰 고위관계자는 "현장에도 확인을 해봤고 사진을 다 봤지만 전혀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처음 발견 당시에는 머리와 목 부분이 붙어있던 온전한 모습이었는데 시신 부패가 심해 영안실 안치과정에서 목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타살 가능성을 일축했다.

경찰은 타살 의혹이 제기되려면 목과 머리가 인위적인 도구에 의해 잘린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그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정확한 규명을 위해서는 엑스레이 촬영을 통한 판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유 전회장의 시신은 이날 오전 전남 순천장례식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원으로 옮겨져 2차 부검이 진행 중이고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목 부위에 외력이 가해진 정황이 없다는 내용을 확인받았다.

유 전회장이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주변이 난잡하고 괴로워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깨끗하게 정리돼 있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에 따라 유 전회장의 도주를 돕던 신도들이 유 전회장을 독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 전회장의 행적에 대해 불만을 품은 신도들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유 전회장이 평소 들고 다닌다는 20억원 상당의 돈가방도 역시 발견되지 않아 누군가 살해 후 현금을 갖고 도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고령인 유 전회장이 평소 고혈압, 당뇨 등 지병이 있었음에 비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자연사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유 전회장의 시신 주변에서 소주병, 막걸리병 등이 함께 발견된 점을 볼 때 당뇨병 환자인 유 전회장이 술을 마시고 저혈당 쇼크사를 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 전회장은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아 술 때문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 소주병의 제조년도가 2003년으로 돼 있어 겉으로는 술병이지만 실제 술이 들어있었는지, 물이나 다른 물질이 들어있었는지 등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구원파 측은 유 전회장의 평소 건강상태, 생활태도 등을 봤을 때 급사, 자살 등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태종 구원파 대변인은 "최소한 지난 5월25일 유 전회장과 동행했던 신모씨가 체포됐을 시점까지 유 전회장이 살아있었던 것이 분명하다"며 "경찰이 사체를 발견한 6월12일에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2주일 정도 만에 그렇게 됐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해당 사체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상당히 초라한 행색에 술에 취한 상태였다"며 "유 전회장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의 미궁 속에 빠진 유 전회장의 사안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과수의 2차 부검 결과를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준호 충북대 의대 교수는 "시신이 자연 부패됐고 외적 손상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자살이라고 특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타살이라면 외상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유 전회장의 시신에서는 외상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 전회장의 고령 나이 등을 이유로 들며 "심근경색, 뇌졸중 등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2차 부검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성환 고려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도 역시 "시신의 손상정도를 따져보고 손상정도가 적다면 타살의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으나 자살로 확정지을 수도 없다"며 "경찰은 명확한 타살의 정황 등이 없을 경우 자살, 사고사 등으로 추정하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자살의 방법 등이 나오지 않아 결론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 박의우 건국대 의학과 법의학교실 교수는 "논란은 유 전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것인지, 맞다면 사망의 원인은 무엇인지"라며 "국과수가 DNA 감정까지 한 상황에서 '유 전회장의 시신이 아니다'라는 등 초점을 흐릴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

그는 "여러가지 의문점이 있는 현 상황에서 수수께끼 맞추듯 유 전회장의 사망원인을 추측하기 보다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