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시아 제재 강화에 이견…경제 타격 우려

유럽연합(EU)이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 책임자들의 자산을 동결하기로 하는 등 제재에 나섰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회원국 간 입장차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EU 외무장관들은 2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 관리들에 대해 비자 금지와 자산 동결 조치 등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또 EU 집행위원회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지 않을 경우 무기와 에너지, 금융 부문을 포함한 전면적인 제재에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경제 관계가 밀접한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수위를 높인 경제 제재 채택에 소극적이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이탈리아 경제장관은 추가 경제 제재가 "부과하는 쪽이나 부과 당하는 쪽 모두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추가 제재에 반대해왔고 프랑스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러시아와 상륙함 2척 공급 계약을 진행 중이다.


전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상륙함 공급 계약에 대해 "당장은 제재 수위가 상륙함 인도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나머지 계약이 이행될 것인가는 러시아의 태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무역과 에너지 부문 등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도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기업 단체인 동유럽경제관계위원회(CEEER)는 제재 부과로 위기가 고조되면 독일에서 2만5000개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고 밝혔다. 최근 경제 지표들을 보면 러시아와 관계 냉각이 독일 경제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유로화는 대(對)러시아 제재가 미칠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로 지난 2월 이후 최저 수준인 유로당 1.3491달러까지 내려갔다.

반면 스웨덴과 영국, 구소련 국가 일부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는 데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입장이 더 강경해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전날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크게 바꿔놓았다"면서 "러시아가 다른 유럽 국가(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속적으로 전쟁을 부추긴다면 유럽 시장과 자본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제 제재를 경고했다.

CNBC는 이날 영국이 구소련 정보기관 KGB의 요원이었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의 사망과 관련해 공식적인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도 러시아에 대한 강경모드 선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태 초기에 영국은 러시아 기업에 대한 제재가 영국의 금융 서비스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대러시아 제재에 따른 경제적 타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U가 개별 인사에 대한 2단계 제재를 넘어 고강도 수준의 3단계 제재를 러시아에 부과하게 되면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씨티그룹은 이르면 오는 9월 3단계 제재가 실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도이체 방크의 로버트 부르게스 애널리스트는 서방의 "최후 수단"은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를 제한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원유 및 가스 가격이 심각하게 출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유럽의 은행과 제조업체 등 기업들은 러시아 기업과의 거래에서 자체적으로 제재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 방안을 찾을 때까지 생산 작업이나 거래를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EU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면 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공식화될 수 있다고 CN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