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지키며 벌이는 일탈의 사랑은 불가능한가

영화 '어떤 만남'에서의 두 남녀. 프랑수아 클루제(왼쪽), 소피 마르소 주연. /사진제공=티캐스트콘텐츠허브

어쩌면 무료하고, 어쩌면 판에 박힌 가정의 일상에서 가끔 '쌉쌀한 오렌지 향'이 나는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6세짜리 아들이 아빠에게 매달려 놀이를 종용하고, 사춘기에 들어선 딸이 '내 인생 참견말라'며 엄마에게 대드는 상황이 길어질수록 잃어버린 설렘의 감정은 불쑥 솟아나는 법이다.


그렇게 아무 탈(?)없이 지내던 중년의 남녀가 우연히 만났다. 가정적인 남편이자 성공한 변호사(프랑수아 클루제)와 자유분방한 사고의 성공한 작가(소피 마르소). 첫 눈에 반하는 이들의 ‘어떤 만남’(31일 개봉)은 여느 중년들의 숨겨진 욕망과 용기를 덜컥 끄집어내면서 ‘사랑 한번 해보라’고 꼬득인다.

50세 가까운 나이에도 ‘라붐’ 시절의 앳된 미소와 사랑스러운 눈망울을 잃지 않은 소피 마르소에게 과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남자는 법과 제도에 길들여진 법조인이고, 여자는 무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작가다. 이 만남에서 우유부단한쪽은 당연 남자다. 철저히 ‘현실적’으로 살아온 남자는 별 문제없이 꾸려온 가정을 저버리릴 용기가 없어 앞과 뒤가 다른 야누스적 행보를 보인다.

‘그녀’앞에선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본능에 의지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헤어질 땐 ‘운명의 논리’를 내세워 "전화번호는 서로 교환하지 말자"고 한발짝 물러선다. 남자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을 친구에게 들키면서도 "한 순간 빠져 허우적대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지키는게 ‘영웅’"이라고 자신을 ‘변호’한다.


여자의 사랑은 좀 더 솔직하다. 유부남은 질색이라며 25세 연하남과 잠자리를 하는 그녀는 어느 순간 ‘쌉쌀한 오렌지 향’이 나는 사랑을 해보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운명의 남자를 만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서로의 가정을 지켜주면서 나름의 일탈에 도전하는 것이다.

남자의 요구대로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지만, 그런 이유 등으로 남자와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남자가 어떤 의미에선 무책임하고, 어떤 의미에선 그럴듯한 발언, "아무것도 정하지 말고 운명에 맡깁시다"고 말하자, 여자는 "신은 안보이는 곳에서 운명을 만든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을 격렬하게 쏟아붓고,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그녀와의 사랑을 절실하게 꿈꾼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있으면서도 그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 불안한 상황을 정리하려고한다. 아내는 이미 눈치채고 마음을 비웠는데도, 그는 껍데기같고 작위적인 가정의 형식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자에게 ‘쌉쌀한 오렌지 향’은 거창한 선물이 아니다. 가정을 버리라고 한 것도, 자신에게 목매달라는 주문도 아니다. 다만 ‘쌉쌀한 오렌지 향’을 조금 더 맡고 싶었을 뿐이다.

가정을 가진 중년들의 일탈적 사랑에 오랜 관습 내지 도덕적 규범들은 이렇게 정의하곤 한다. ‘그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다할지라도 결코 아름답지는 않다’고. 남자는 아름다움을 위해 진실을 버렸고, 여자는 진실을 위해 아름다움을 버릴 각오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랑은 끝났다. 절반의 아쉬움과 절반의 안도를 끌어안은 채. 쌉쌀한 오렌지는 어떤 냄새일까. 문득 그 향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