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 내국인 카지노…서울 2200만명 도박판 될라?

샌즈그룹이 14일 공개한 10조원 규모의 잠실 복합리조트 조감도. 주건물은 조개가 품은 진주를 형상화했다/사진제공=샌즈그룹

세계 최대 복합리조트 기업인 미국 샌즈그룹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내국인 카지노'를 개발하겠다는 베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샌즈그룹은 서울 잠실운동장 일대를 대규모 복합리조트로 개발하는데 10조8146억원(106억 달러)을 투자하는 대신 서울시에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해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내국인 카지노 허용? '뜨거운 논란'
샌즈그룹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호텔'과 마카오 '베네시안 마카오' 등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적인 카지노 재벌. 이런 샌즈그룹이 서울시에 10조원이 넘는 투자의 전제 조건으로 1000만 서울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카지노'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단 셸든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81)이 최근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에게 잠실 개발 계획을 직접 밝힌 것은 내국인 카지노만 허용해주면 그만큼 확실하게 투자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청사진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애덜슨 회장은 잠실운동장 126만㎡ 부지에 컨벤션센터와 호텔·카지노·공연장·체육관 등을 묶은 복합리조트를 개발하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건축한 지 32년이 된 잠실야구장을 헐고, 대신 개발이 무산된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8500억원을 들여 3만석 규모의 돔구장을 신축해 주겠다는 솔깃한 대안을 제시했다.

◇내국인 카지노 허용되려면 '샌즈그룹특별법' 만들어야


그렇다고 샌즈그룹이 무조건 서울에 돈다발을 풀겠다는 것은 아니다. 106억 달러 투자의 전제 조건은 내국인도 입장 가능한 '오픈카지노' 허가다.

사실 내국인 카지노는 서울시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법을 따로 제정해서 추진해야 하는 사안이다. 현재 정부와 국회는 '내수 진작'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관광산업 활성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선상 카지노와 영종도 카지노 등 카지노 관련 법안도 입법화를 추진하는 상황이다. 자칫 내수 진작이라는 화두에 파묻혀 서울의 내국인 카지노도 입법화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현행법상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카지노는 오직 강원랜드뿐이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1998년 6월 설립됐다. 이 특별법은 석탄산업 사양화로 낙후된 폐광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득이하게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했다.

만약 샌즈그룹 의도대로 내국인 카지노가 가능하려면 관광진흥법을 개정하거나 강원랜드처럼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있다. 현행 관광진흥법 28조4항은 카지노의 내국인 입장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바꾸거나, 따로 특별법을 만들어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카지노 특별지구'를 운영하는 방식이 가능한 것이다.

◇샌즈그룹, '잠실 카지노'로 1000만 시민 상대 도박사업 하겠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특혜성으로 외국 자본에게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면서 한국 최대 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내국인 카지노를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우선 서울시 인구 1000만명과 경기도 인구 1200만명의 접근성이 쉬운 잠실에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하면 서울이 '거대한 도박 도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샌즈그룹이 잠실을 지목하는 이유도 배후 인구의 규모로 볼 때 전 세계에서 이만한 카지노 입지여건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카지노 업계는 서울 잠실에 내국인 카지노가 들어서면 접근성과 편의성, 유동인구, 자금력 등을 감안할 때 강원랜드의 3~4배 이상 드롭액(칩 구매액)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강원랜드의 드롭액이 5조8540억원(입장객 306만명)이었으므로 잠실 카지노는 최대 20조원을 훌쩍 넘는 드롭액을 기대할 수 있다. 흥행에 성공한다면 샌즈그룹은 오픈 첫해에만 드롭액으로 투자금액의 2배 이상을 올릴 수 있다.

수익성은 또 어떤가. 강원랜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896억원으로 8.3%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반 소비재 제조업보다 2~3%P 높은 수준이다. 잠실 카지노가 이런 수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연간 1조5000억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개장 7~8년 정도면 카지노 영업만으로도 샌즈그룹은 투자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샌즈그룹은 이미 전 세계에서 카지노 사업 노하우를 쌓아 20%를 훨씬 웃도는 영업이익률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특히 샌즈그룹이 세계 곳곳의 카지노사업 전례를 볼 때 투자 원금을 빠른 시간 내에 회수한 뒤 사업장을 매각하는 이른바 '먹튀' 가능성도 늘 열려 있다.

◇외자유치·내수활성화 논리로만 추진은 무리
일각에서는 내국인 출입 횟수와 베팅 금액, 블랙리스트 제도 같은 관리·감독 시스템으로 내국인 카지노의 후유증을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도박 중독의 사회적 비용이 80조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내국인 카지노는 득보다 실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카지노 업계 내부에서조차 샌즈그룹의 내국인 카지노 설립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외자 유치나 자본, 내수 활성화 논리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한 카지노업체 관계자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카지노가 생기면 수요가 몰릴 것은 뻔하다"며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강원랜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카지노업체 관계자는 "외국인들에게 카지노는 일종의 게임이지만 국내에서는 사행성과 중독성이 강하다"며 "국민적 합의 없이 국회와 정부, 서울시의 논의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민들도 벌써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치동의 주부 정모씨(37)는 "도박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강남의 내국인 카지노 요구 자체가 어이없다"고 말했다. 삼성동의 직장인 김 모씨(32)도 "강남에 내국인 카지노를 건립하겠다는 발상은 말도 안 된다"며 "아무리 내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해도 시민들을 도박으로 몰아서 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