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대표 PEF '보고펀드' 빚 못갚아 '디폴트'

보고펀드가 LG실트론 지분 인수를 위해 금융권에서 차입했던 융자금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졌다. 금융정책국장 출신의 변양호 대표가 이끄는 보고펀드는 국내 토종 대표 PEF(사모투자전문회사) 운용사로 자리매김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됐다.

25일 PEF 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지분투자 인수금융 만기일인 이날까지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채권단 일부는 오는 28일 기한이익 상실을 통보하고 이날 채권단 회의를 열어 주식담보권을 행사해 압류 및 매각을 논의하는 등 향후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은행권이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은 과거 대선주조를 인수했던 코너스톤에 이어 두번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채권단은 당시 코너스톤이 보고펀드와 같은 상황에 빠지자 주식을 압류해 부산 향토 기업인 비엔그룹에 매각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펀드의 경우 경영권 지분권자로 LG가 있고 보고펀드의 보유 지분이 29% 가량에 불과해 매각이 수월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은행권이 선언할 기한이익 상실은 채권의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고 당장 갚으라는 의미다. 기한 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보고펀드는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되고 담보로 맡겨둔 LG실트론 지분 29% 가량을 압류 당하게 된다.

보고펀드는 2007년 KTB프라이빗에쿼티(PE)와 손잡고 LG실트론 지분 49%를 동부그룹으로부터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인수금융 2250억원을 빌렸다. 이 중 이날 만기를 맞은 대출금은 우리은행 900억원, 하나은행 450억원이다.


보고펀드는 당초 LG실트론의 IPO(기업공개)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LG실트론 지분 51%를 보유한 경영권자인 LG그룹과 의견 조율에 실패하고 투자금 회수에 충분한 상장 기회를 찾지 못하면서 자금회수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의 기업가치가 최근 경기침체와 산업적 불황으로 급속히 떨어지자 더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지분 인수금을 빌려준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금융 만기연장을 거부하면서 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은 것이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 경영권자인 ㈜LG와 이 그룹에 상장절차 중단으로 인한 투자실패의 책임을 지라며 일부 자신들의 지분을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LG 측은 이런 행위가 배임 논란을 야기할 수 있고 투자실패와 금융차입 등에 대한 책임은 보고펀드에 있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보고펀드는 급기야 이 잘잘못을 LG에 법적으로 묻겠다며 구본무 LG (79,100원 ▼100 -0.13%)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보고펀드는 2010년 LG와 주주간 계약을 통해 LG실트론의 이사회 결의를 거쳐 상장을 추진했는데 이듬해 하순 구본무 회장의 지시로 상장추진이 중단되면서 투자금 회수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LG실트론의 무리한 계열사 지원으로 실적이 악화돼 상장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보고펀드는 LG실트론이 2011년 LED(발광다이오드)용 6인치 사파이어 웨이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LG계열사인 LG이노텍과 손을 잡은 것도 문제 삼을 방침이다. LG실트론은 관련 웨이퍼사업에 1140억원을 투자한 뒤 2년 동안 매출 36억원을 기록한 채 사업을 접었다. LG실트론이 LG이노텍과 사업을 추진한 것은 계열사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고 주주장부 열람, 등사신청을 요구한 상태다.

LG그룹은 보고펀드의 소송 제기와 관련, 배임 강요와 명예 훼손에 해당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LG는 "보고펀드가 자신들이 보유한 LG실트론 주식을 고가로 매입할 것을 강요했고 차입금에 대한 이자지급 및 연장 실패 책임을 (LG에) 전가해 왔다"고 밝혔다.

LG는 "무리한 인수와 차입으로 어려움을 겪자 그에 따른 손실을 LG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시장경제 논리는 물론 사모펀드(PEF) 투자 원칙에도 어긋나는 억지 주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