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지원하면 보험 팔아줄게" 보험사·대리점 뒤바뀐 갑과을

#. 한 보험대리점(GA)가 인터넷 카페에서 소속 설계사와 보험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노출해 논란이다. 설계사 이름, 주소, 주민번호와 함께 보험 가입자의 이름, 주소, 증권번호 등의 개인정보 수백 건이 로그인 없이 열람 가능했다. 원칙적으로 GA 자체 전산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데, 이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 중소형 GA들은 인터넷 카페에 고객 정보를 저장한다.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고, 내부통제도 잘 될 리가 없다"는 게 보험업계 주장이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개인정보 관리 단속에 나섰지만 정작 구멍은 따로 있던 셈이다. 내부통제, 전산 시스템구축, 고객정보 보호는 GA업계에게 아직 먼 이야기다. 이들은 '수수료 극대화'를 위해 기형적이고 편법적인 방식의 조직을 운영 중이다.

이로 인해 민원이 빈번하게 발생하나 GA 책임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GA에서 발생한 소비자 민원은 규정상 보험사 민원으로 잡히는 까닭이다. 매출의 20~40%를 GA에게 의존하는 중소형 보험사는 되레 GA 눈치를 보는 실정이다. 보험사들이 점유율을 높이려고 GA에게 편법지원을 한 게 후일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수수료 지상주의" 기형적인 '지사형 GA'= GA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4713개에 달한다. 이름이 GA라고 해서 다 똑같진 않다. 독립형, 지사형, 매집형, 1인 GA등 다양하게 분류된다. 현재 GA시장은 수수료율이 높고 독자적인 경영권 유지가 가능한 지사형과 1인 GA로 급속 재편 중이다.

한국재무설계, 에이플러스에셋 등 독립형GA는 본점 중심으로 규정, 제도, 조직체계가 이뤄져 모든 관리가 본점 통제 하에 있다. 어찌 보면 가장 모범적인 모델로 꼽히지만 영업 실적 면에서 지사형GA에 역전 당했다.

지사형(연합체형)은 각자 운영하던 법인대리점이 연합, 별도 법인을 설립한 형태다. 외형상 동일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각자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공룡' GA로 알려진 프라임에셋, 글로벌에셋코리아 등이 해당된다. 또 대형 대리점에 지사 형태로 편입한 매집형, 모든 설계사가 지점장인 1인 GA형(더블유에셋, 브이에프씨, 에프엠에셋) 등 다양한 GA가 활동 중이다.


이 중 지사형은 산하 지점(지사 도는 사업단)이 본점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게 특징. 최근엔 지사 아래 또 다른 지사를 두는 '다단계형'으로 발전했다. 본사가 수수료의 5%만 갖고 95%는 지사에 몰아주는 탓에 본사 인프라는 엉망이다. 고객관리나 내부통제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GA업계도 이를 인정한다. 한 관계자는 "수수료와 신계약 인력 외에 운영인력이 거의 없다"며 "인터넷 카페로 고객정보를 관리하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부당행위로 영업정지가 예상되면, 다단계 맨 아래 지점은 다른 GA로 재빨리 이동해 버젓이 영업을 한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골프채 지원하면 팔아줄게" 속타는 보험 영업맨=소속 설계사 1만명인 공룡대리점이 탄생하면서 GA의 협상력은 더욱 커졌다. 보험사 매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단 점을 무기로 보험사에 무리한 지원요구도 한다.

한 보험사 직원은 "대형 GA가 보험사 지점장에게 문자 메시지로 '설계사 시책으로(특별수당)으로 골프채가 3개 필요하다. 제공해 주는 보험사 상품을 팔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며 "요구를 안 들어주면 우리 상품을 팔지 않겠다고 나올게 두려워 이런 요구도 감수하게 된다"고 푸념했다.

사무실 이전비용, 임차비용 지원은 기본이다. 대형사인 한화생명은 130개 사무실을 지원했는데, 보증금만 158억원이 들었다. 월 임차료와 관리비로도 8억4000만원이 더 들었다. 이 보험사 출신이 세운 대형GA에 지원금이 투입됐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일부 GA는 회식비용이나 자체 해외여행·체육대회 운영비까지 보험사들에게 떠넘긴다는 후문이다.

중소형 보험사들은 매출의 20%, 많게는 50%까지 GA에게 의존한다. GA가 매출을 쥐고 흔드는 까닭에 편법지원이나 불법적 요구를 안 들어 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럴 바에 GA를 만들자"면서 일부 보험사는 자회사 형태로 GA를 설립했다. 지난 1년간 동부화재, 라이나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 자회사형 GA를 설립했다.

◇"누가 갑인가요?" GA를 '갑'으로 만든 건 보험사?="GA가 보험사에 '갑'"이란 표현에 대해 GA업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업 지상주의'로 먼저 GA에게 편법지원을 하고 일정 수준의 매출을 요구한 것은 보험사라는 지적이다. 한 생보사 대표는 "보험사들이 점유율 확대라는 욕심만 버린다면 굳이 GA에게 휘둘릴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GA관계자는 "GA의 요구를 들어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험사의 몫"이라며 "갑을논쟁의 시작점은 매출을 늘리고 싶은 보험사 영업 임원과, 비용을 줄이고 싶은 보험사 관리 임원의 갈등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GA채널은 예정 신계약비 안에서 사업비를 지출하므로 비차(사업비 절감) 손익 측면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이다. 전속 설계사 대비 GA쪽에 지급되는 수당이 높을 수는 있으나, 전속 설계사에게는 복리후생비가 추가로 들고 교육비·지점 운영비도 만만치 않아서다. 불완전판매율이 높고, 민원이 다발하며 보험계약 유지율이 낮다는 점에서는 GA가 '저비용 저수익성'이란 한계점을 안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매출량에 따라 GA수수료율을 차등지급할 게 아니라 유지율과 생산성이 좋은 GA에 높은 수당을 줘야 고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며 "일정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GA와는 고객정보를 공유하고 보험사도 사업비 중 유지비도 일부 양보해야 상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