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의 조건

완판 제품이라 불리는 명품은 한 번 유행이 시작되면 몇 주 뒤 모두의 손목에 들려지는 매력 없는 ‘국민 가방’이 되곤 한다. 미국 경제 주간지 은 이런 현상을 ‘맥럭셔리(MacLuxury)’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맥도날드(MacDonald)와 럭셔리(Luxury)를 합성한 말로 빅맥만큼 누구나 쉽게 살 수 있게 된 명품의 대중화 현상을 뜻한다. 이후 맥럭셔리와 반대되는 의미로 위버(Uber)와 럭셔리가 합성된 ‘위버럭셔리(Uber-luxury)’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일반 명품보다 많게는 수십 배 이상 비싼 초고가 명품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품이 곤란한 입장에 처한 진짜 이유는 잃어버린 희소성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햄버거와 그 가치가 비견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명품의 기준에 대해 논해야 한다면, ‘정성’이라는 고리타분한 단어에서 쉽게 그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애초에 최상의 품질 덕분에 얻게 된 그 이름처럼 진정한 명품은 제품을 구입한 이후의 관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 7 YEARS, FERRARI
페라리는 차량 구매자를 대상으로 7년간 무상으로 차량을 관리해주는 ‘7년 무상 메인터넌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페라리 서비스 규정에 따라 엔진 오일과 오일 필터, 에어컨 필터, 브레이크 오일, 팬 벨트, 와이퍼 블레이드 등의 교체 및 정기 점검을 연 1회 실시하는 것. 물론 본사의 인증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 근사한 차를 점검할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자동차에 대한 서비스이므로 중간에 차량 소유자가 바뀌더라도 7년 무상 혜택은 양도자에게 그대로 승계된다. 7년이라는 놀라운 기간은 오랫동안 명품의 품질을 유지시키는 것이 결국 페라리라는 이름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브랜드의 신념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그래서 ‘페라리는 영원하다!’


◇ LIFE GUARANTEE, RETROSPECS & CO
죽는 날까지 함께하자는 약속은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평생’을 보장하는 하이 클래스급 관리는 세상에 존재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아이웨어 브랜드 레트로스펙스는 구매 고객에게 라이프 개런티를 제공한다. 레트로스펙스의 설립자 제이 오언스는 대학 시절 취미로 1930년대에 만들어진 12K 금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골드 프레임 안경테를 찾아다니던 그는 결국 안경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평생 동안 고객의 안경을 고쳐주는 레트로스펙스의 관리는 일생 동안 부품을 수집해 컬렉션을 완성한 설립자에서 비롯됐다. 코 받침부터 다리, 심지어 나사 하나까지 판매 당시 부품을 보유하고 있는 레트로스펙스이기에 약속은 늘 지켜진다.



◇ 5 YEARS, LOUIS VUITTON
1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루이 비통도 시계 분야에서는 신입이다. 2002년 내놓은 루이 비통-탕부르가 첫 시계 컬렉션이다. 뒤늦게 대열에 뛰어든 만큼 진정한 명품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이들이 제공하는 관리 방식은 정성을 넘어 열정에 가깝다. 루이 비통은 5년간 제품의 품질을 보증한다. 스트랩과 버클의 교체, 메탈 브레이슬릿의 길이 조정, 시간 및 날짜 설정 외에도 무브먼트 교체, 배터리 교체 등이 포함된다. 수리 보증 기간은 수리 날짜로부터 12개월이지만 A/S의 경우 시계 제조 마지막 날로부터 최소 10년 동안 적용된다. 무료로 백 케이스에 인그레이빙해주는 서비스에서도 신입의 열정적인 자세가 그대로 느껴진다.


◇ 7 YEARS, ULTRASONE
헤드폰도 장인이 만든다. 음원이 가진 본래의 소리를 가장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드는 방법이 제일이기 때문이다. 울트라손의 모든 제품은 유별난 독일 장인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이들은 희귀 금속 루테늄만 골라 쓰고, 에티오피아산 양가죽으로만 헤드폰의 덮개를 씌운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작품을 업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보살핀다. 마모 등의 자연 노화가 아니라면 5년 보증을 기본으로 하고, 한국에서는 2년을 추가해 구입 후 7년 동안 소리의 정교함을 관리해준다. 한쪽의 드라이버가 이상이 있을 경우 사운드의 밸런스 차이를 위해 양쪽을 모두 교체한다. 이 까다로운 장인들에게는 결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 2 YEARS, CHAUMET
200여 년 전 프랑스 전용 왕실 보석상으로 태어난 쇼메는 물건을 허투루 만들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쇼메의 농축된 장인 정인이 고스란히 담긴 아틀리에에서 모든 수리와 보수 작업이 진행되며 그 기간은 평균 최소 2개월 이상이다. 세공 전문가들이 리사이징 작업을 하며 플랫폼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 3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새 제품을 만드는 것과 수리는 이들에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쇼메의 고고한 사후 관리는 물건을 구입한 날로부터 2년 동안 무상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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