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 ON SOU‘WESTER

사우웨스터 코트와 안에 입은 셔츠, 타이, 팬츠 모두 버버리 프로섬.

먹구름이 몰려오는 날이면 남자는 하루 종일 새로 산 수트와 슈즈를 걱정한다. 우산은 그 걱정으로부터 남자를 보호하는 전능한 도구다. 하지만 우산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레인코트의 대명사이자 비바람으로부터 남자를 보호하는 방패, 트렌치코트는 어떤가. 남자의 복식사에서 트렌치코트는 곧 버버리로 인식돼왔다. 그래서 트렌치코트를 버버리 코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버버리는 비옷이라는 특화된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남자들이 비와 바람으로부터 매력적으로 피하는 방법인 트렌치코트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종류로 존재했다. 남자의 넓은 품을 가로지르는 더블 브레스티드 디자인과 허리 벨트,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우선적으로 막아주는 오른쪽 어깨의 건 패치(Gun Patch), 그리고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정석이었다. 이후 트렌치코트의 디자인은 점차 다채로워졌고 싱글 브레스티드 디자인에 견장이나 벨트와 같은 장식을 배제되면서 그 길이 또한 짧아졌다. 소재 또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면에 더 충실하게 되면서 트렌치코트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레인코트로 진보했다.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찰스 매킨토시가 고무를 녹인 후 면이나 울 소재에 덧바르면 방수 섬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래, 곱게 짠 천에 투명한 막이나 라미네이트를 코팅하면서 레인코트는 더욱 완벽한 방수가 가능해졌다. 그 후로도 혁신적인 작업은 계속됐고, 나일론이라는 신소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버버리의 맞수, 아쿠아스쿠텀 역시 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라틴어로 ‘물 막는 방패’라는 뜻의 아쿠아스쿠텀은 마치 물 먹는 하마처럼 장마철에 유독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아쿠아스쿠텀은 트렌치코트의 원형을 고수하는 버버리에 맞서 한층 진보한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전통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한 다채로운 디자인과 호사스러운 색깔,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가볍고 방수 기능까지 겸비한 나일론 코트가 그것이다. 이 코트는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남자의 가방에 접어 넣을 수 있을 만큼 휴대성까지 뛰어났으며 언제 어디에서든 비바람으로부터 남자의 스타일을 보호하고 유지시켜주는 방패와 같았다.


시대가 변하면 남자의 가치관 역시 달라진다. 버버리 또한 급진적인 변화가 절실했다. 전통적인 것만을 고수하며 자칫 고루한 이미지로 전락할 뻔한 버버리가 강수를 띄웠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진두지휘 아래 창작력과 기술력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옷의 형태와 실루엣을 실험하고 나일론을 비롯한 네오프렌 트렌치코트까지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번 시즌 한 단계 진보한 사우웨스터(Sou’wester) 코트를 출격시켰다. 원래 사우웨스터는 바다의 거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길이가 긴 방수 코트와 함께 쓰던 선원들의 방수 모자를 일컫는데, 버버리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과 트렌치코트를 대신해 이 사우웨스터에서 영감을 받은 한층 경쾌해진 21세기형 레인코트를 선보였다.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내놓은 이 혁신적이기까지 한 사우웨스터 코트는 노란색도 있고 녹색도 있고 무던한 네이비색도 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간과할 수 없는 유행인 깅엄체크도 있다. 그중에서도 깅엄체크 사우웨스터 코트는 트렌치코트로 대변되는 레인코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남자의 여름에 활기를 불어넣는 존재로 떠올랐다.

전통적인 트렌치코트처럼 길이가 긴 코트는 폭우와 마주치거나 물웅덩이를 건너야 할 때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반면 재킷 길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긴 정도의 코트는 가벼운 데다 남자를 덜 성가시게 한다. 차를 탈 때, 비행기에 오를 때, 도심 속을 활보할 때도 편하고 활동적이다. 그래서 잘 고른 사우웨스터 코트는 한여름 어디에서든 특별하게 빛난다. 사우웨스터 코트 한 벌과 노란색 셔츠, 빨간색 타이, 네이비색 팬츠만 있다면 낮과 밤 동안 남자는 한층 젊고 경쾌해질 것이다. 한여름 남자에게 이 21세기형 레인코트보다 요란한 치장이 또 있을까.


사진 KIM JAE MIN
모델 이현욱
헤어&메이크업 김순정(JI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