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또 졌지만 이겼다"… 나가지 못한 기사

전남 순천 곡성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31일 오전 전남 순천 덕암동 역전시장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뉴스1

전라도에서 새누리당이 당선 됐다고? 많은 사람이 이정현 새누리당 순천·곡성 재보선 당선인의 승리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공고한 지역주의를 깬 '최대의 이변'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파동'에 등돌린 호남 민심 여권 실세에게 2년동안 기회를 준 것. 분석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 민심을 흔든 건 '이정현'이라는 인물이었다. 유세 현장에서 본 이 당선인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재보선 기간동안 많은 후보를 만났지만 이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진 사람은 없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광주에서 만난 이 당선인은 임금님 복장이었다. 표정은 여유로웠고 유세 차량 근처에는 인파로 가득찼다. 동원된 인력으로 보였다. 39.7%. 엄청난 득표율이었지만 광주의 벽을 넘진 못했다. 40%는 새누리당 후보가 호남에서 넘을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았다.

2년 후 재보선. 이 당선인이 순천·곡성 지역에 출사표를 냈다. 호남에만 4번째. 말 그대로 사지였다. '박심'이나 '대통령의 입'과 같은 서울에서 먹히는 수식어들은 순천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이번에도 어렵겠다'. 이 당선인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사 윤곽을 미리 잡았다. "졌지만 이겼다". 의미있는 도전이었고 어느정도 지지율도 나오겠지만 결국 진다. 오히려 패배 후 이 당선인의 행보가 궁금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오려나.
(선거 당일날인 지난달 30일 저녁, "졌지만 이긴 이정현, 지역주의 벽 앞에 또한번 무너져"라는 제목의 기사를 미리 써뒀다. 결국 이 기사는 나가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향했다.)

지난 20일. 순천 웃시장 앞에서 이 후보를 다시 만났다. 그는 유세 차량에 올라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고 외쳤다. "손 한번만 잡아달라"고 할 때는 목이 잠겼다. 우는 건가 싶었다.

구겨진 면바지에 투박한 운동화. 엉덩이 쪽에는 얼룩이 묻어 있었다. 머리는 땀으로 떡지고 얼굴엔 선크림이 허옇게 떴다. '동네 아저씨'. 임금님 복장을 입은 여유로운 표정의 이정현은 더이상 없었다.

연설이 끝나고 이 후보는 시장 상인들에게 달려갔다. "너무 시끄러웠지요?"라며 말을 붙였다. 취재 기자에게는 거의 짬을 내주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이 당선인을 쫓았다.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차량으로 뛰어가던 이 후보가 뒤를 돌아봤다. 손짓으로 오라는 표시를 했다. 얼른 차에 따라탔다.

딴 데 정신이 팔린 것 같은 표정.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질문에는 빠른 속도로 답했다. 그는 "오직 진심이면 통한다는 말을 믿고 뛴다"고 했다. 진심은 자기확신이 없으면 쓰지 못하는 단어다. 확실히 이 당선인은 배수진을 치고 선거에 임하고 있었다.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열린 지난 30일 오후 전남 순천 곡성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 조래동에 마련된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 되자 꽃다발을 든 채 기뻐하고 있다./뉴스1

이 당선인이 '되겠다' 싶었던 건 택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였다. 한 택시 기사가 이 후보가 택시노조를 찾아와 지역 발전 공약을 설명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천정원박람회의 국가공원화' 공약 관련이었다.

정원박람회 당시 택시 기사들은 하루에 일당 3만원씩을 더 벌었다고 한다.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택시기사들에겐 가장 피부에 와닿는 공약이었다. 이 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이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했던 것이다.

이후 만난 택시기사들은 하나같이 '이정현 2년만 시켜보자'나 '예산폭탄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택시는 '여론창구'이자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이 당선인은 이 점을 이용했다. 다른 후보들은 택시 기사들에게 전화 한번 안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이 당선인의 진정성 있는 행보는 선거 승패를 좌우했다. 그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국회에 와 축제를 즐기지 않았다. 선거 하루 뒤인 지난달 31일에도 이 당선인은 자전거를 끌고 주민들에게 감사인사를 돌았다.

앞으로 2년 동안 이 당선인이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지 모른다. 2년짜리 '이변'으로 남을지 '지역구도 완전 타파'의 상징이 될 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