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과 서점가에 몰아친 '이순신' 열풍...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중에서)"


경기 침체와 정치 불신 속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명량’은 역대 최고 평일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이순신을 재조명한 서적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명량'은 지난달 31일 하루 동안 70만2864명의 관객을 동원,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평일 관람객수다. 누적관객수는 개봉 이틀 만에 14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 명량은 임진왜란 6년째인 1597년 전남 진도 앞 명량해협에서 벌어진 조선과 왜 해군의 전투를 다룬다. 이순신은 전의를 잃은 병사와 달랑 12척의 배를 이끌고, 330척에 달하는 왜군과 결전에 나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관객들은 명량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있다. 이례적으로 개봉 초기부터 중장년층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명량의 순제작비는 약 150억원이며, 여기에 마케팅비용까지 더하면 19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익분기점(BEP)은 관객수 500~600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제작사는 김한민 감독이 대표를 맡고 있는 빅스톤픽쳐스다.

평론가 등 전문가보다는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이 더욱 뜨겁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영화에 따르면 '명량'은 기자와 평론가의 평점은 6.0이지만, 관람객의 평점은 8.92에 달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화를 관람한 뒤에 만족도가 더 높은 셈이다.

영화계에서는 개봉 첫 주지만 '명량'의 1000만 관객 동원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1000만을 돌파한 영화들은 100만 달성에 사흘 이상 걸렸다.

CJ E&M 관계자는 "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 인간적인 모습이 최민식의 연기와 맞물리면서 재발견되는 것 같다"며 "후반부 61분의 해상 전투신도 흥행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가에서도 지난달부터 이순신 관련서적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쟁의 신 : 기적의 승리, 명량', '이순신 불멸의 신화',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교감완역 난중일기' 등 10여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도 재출간됐다.

이 가운데 북한 국어학자 홍기문의 첫 한글 번역본을 반영한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새로 발굴한 32일치 일기를 새롭게 수록했다. 직접 전쟁 중에 백성을 위해 고민했던 이순신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한다는 평가다.

명량에서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도 난중일기를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지난달 31일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교보문고 온라인 일간 역사문화 부문 3위에 새롭게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순신 열풍은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과 분노가 확고한 철학과 강한 추진력을 갖춘 리더십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쟁이라는 혼란의 시대에 백성과 나라를 위해 목숨마저 내던졌던 이순신과 같은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갈증이 이순신의 재조명이라는 현상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사극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얻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순신과 정도전은 모두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꿨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송준호 서강대학교 교수는 "이순신은 사익을 버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며 "국민들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자세가 현재 국가의 지도자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해석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