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추석에 가을장마까지…과일농가 두번 운다

이례적인 가을장마로 막 수확기에 접어든 과일과 채소, 곡식 등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농가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추석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잦은 비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품질까지 나빠져 유통업계도 노심초사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집중호우로 복숭아와 포도 등 제철 과일농가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다 익은 복숭아가 거센 빗줄기를 견디지 못하고 꼭지가 무르는가하면 비닐하우스 속 포도는 수분이 넘쳐 알이 터지거나 썩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충북 영동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연이은 폭우로 상품성이 떨어져 팔지도 못하고 폐기처분해야 하는 물량이 상당부분 발생한데다 시세까지 지난해보다 30% 이상 떨어져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농산물도매시장의 복숭아(미백) 경락 가격은 1상자(4.5kg)에 1만7000원으로 전년 같은기간의 1만3000원보다 44.7% 폭락했다. 포도 경락 가격도 1상자(5㎏)에 8000원∼1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20~30% 가격이 하락했다.

사과와 배 등 햇과일은 낙과 피해가 크지 않지만 품질이 크게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추석 명절을 앞둔 수확 시점에 비가 더 내린다면 과일이 더 무르거나 당도가 떨어져 상품 가치 자체가 저하될 수 있다. 제대로 익지 않아 착색이 안 되는 과일도 늘어날 전망이다.

채수호 롯데마트 국산과일팀장은 "38년만에 가장 이른 추석에 대비해 다양한 대체산지를 개발해 물량을 확보했는데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고 있다"며 "추석 햇과일 수급에는 차질이 없어 보이지만 당도와 크기 등 품질은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추석 선물용 과일 뿐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도 가을장마로 위협받고 있다. 비에 약한 시금치와 상추 등 엽채류는 이미 재배물량이 급감했다. 수확량이 줄면서 가격도 급등세다. 대형마트에서 지난주 3000원에 팔던 시금치(1단)의 경우 1주일새 3500원으로 17% 정도 급등했다. 상추(1봉/130g) 값도 지난주 1800원에서 이번 주 2500원으로 40% 올랐다.

햅쌀이나 녹두 등 곡식 농가도 예상치 못한 가을장마로 피해가 크다. 쌀과 녹두는 6∼7월 장마가 끝난 뒤 8월 중순부터 수확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최근 연이은 폭우 때문에 출하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날씨가 좋아야 수확이 가능한데 농가들은 기상청 일기예보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반면 때늦은 장마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상품도 있다. 제습기와 우산 등 비 관련 상품 판매율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서다. 지난 13∼19일 이마트가 판매실적을 분석한 결과 제습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5%나 판매가 늘었다. 같은 시점에 우산도 전년대비 218% 더 많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