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회장이 팔목 문신을 한 이유…박용만 회장의 아들사랑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20일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캠페인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빅앤트인터네셔널 대표가 아버지에게 얼음물을 쏟아붓고 있다./ 사진=박서원 페이스북 영상 캡처

3∼4년 전의 일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친분이 있는 언론인들과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박 회장은 실내가 더웠는지 와이셔츠 소매의 단추를 풀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 때 테이블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박 회장의 팔목으로 모아졌다. 소매에 가려졌던 팔목 문신이 드러난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 점잖지 못하게 문신이라니. 의아해하는 참석자들에게 박 회장이 먼저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들이 '타투'를 하고 왔길래, 아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걸 했는지 나도 한번 해 봤습니다."

박 회장이 한 것은 한번 하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 아니라, 헤나 염료로 팔목에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도 2주 정도는 물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박 회장이 '생각을 이해하고 싶다'고 한 대상은 바로 장남인 박서원 빅앤트 인터네셔널 대표(36)다. 지난 21일 인터넷을 달군 박용만 회장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참여 사진에서 활짝 웃으며 박 회장에게 얼음물을 끼얹고 있는 이가 그다. 박 회장은 서원 씨의 추천을 받아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했다.

지금은 어엿한 광고회사의 대표지만, 다른 '재벌가' 자제들에 비해 '튀는' 학창시절을 보내 그는 아버지의 걱정이었다. 언론 인터뷰 등에 따르면 서원 씨는 고등학교 때 한 반 50여명 중 꼴찌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정원 미달로 간신히 국내 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갔지만, 퇴학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사 경고를 2번 받고 전공을 4번 바꿨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등 엘리트코스를 밟은 동생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차장(29)과도 비교되는 이력이다.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의 고충은 짐작할 수 없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서원 씨를 나무라는 대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서원 씨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아버지에 대해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항상 하셨던 말이 있다. '넌 나중에 어른이 돼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라는…"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가족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 회장, 부인 강신애 씨, 장남 서원 씨, 차남 재원 씨 내외. /사진=박용만 회장 측 제공

박 회장과 가까운 한 재계 인사는 "박 회장이 아들이 다른 길을 걷는 것이 기껍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조급하게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게 기다려준 것이 박 회장의 교육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원 씨는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광고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 한국인 최초로 세계 5대 광고제를 석권하면서 광고계의 샛별로 떠오른다.

이같은 박 회장의 아들 사랑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 인재상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박 회장은 대학을 찾아 채용설명회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실수의 과정을 지켜봐 주고 약속을 했을 때는 비용을 수반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고 하면 그 조직의 룰 안에서 결과적으로 조직원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발 한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