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의 힘, 그것은 사람의 울림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지난 주 한국을 방문한 바티칸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교 신자 뿐 만이 아닌 전 국민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열심히 TV를 통해 그 분의 행적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에게서 진정성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사람은 동물적인 본능을 지닌 족속들이라 같이 느끼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게 통상적일 것이다.

필자가 눈에 띄게 TV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지상파나 종편을 막론하고 앵커와 게스트 로 참여한 이들의 얼굴 표정이었다. 교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행적을 살필 때 한결같이 평화로운 웃음과 천진한 표정들이어서 깜짝 놀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우선 입가에 미소가 먼저 번지고 행복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이제까지 다른 뉴스나 정보들을 전할 때의 얼굴 표정은 살벌하고 억지 웃음과 냉소, 분을 삼키는 울분, 그리고 자괴감 등이 보였으나 교황의 행보를 전달할 때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이처럼 사회의 엄청난 파장과 변화가 있다는 것은 종교의 힘(물론 종교의 힘은 대단하고 막강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보다는 사람 자체에서 오는 울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쟁과 기아로 인해 세계는 참담해 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이라도 이런 울림을 갖는다는 것은 한줄기 빛으로 세계인에게 다가갈 것이다.

필자가 모스크바에 살면서 몇 년이 지나고 조금씩 러시아 사회와 정치적인 흐름, 일반 대중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면서 안정적으로 러시아를 대하게 되었다.

매 해, 연 말이 되면 우리나라 자정에 보신각 종을 울리듯이 러시아는 모스크바 시장을 비롯하여 러시아 대주교가 참석하는 자정 미사가 초저녁부터 열리고(집전이 거의 두 시간가량 걸린다) 자정에는 엄청난 축포가 터진다.

필자가 있었을 때는 알렉세이 2세로 엄청 근엄했다. 덩치 크고 배가 나온 그리고 하얀 백발 수염을 기른 러시아 정교의 주교는 중요한 시점에 대통령과 동등하게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 점이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 바로 이런 것이 정교일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가졌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고 공산주의 시절에는 레닌이 “종교는 아편이다”를 외치고 철저히 신앙생활을 금했는데 실제 인민들의 생활은 종교가 몸에 배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 학생이 교실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나 할머니는 반드시 성호를 긋고 손을 들어 물 뿌리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한결같이 “슬라바 보구(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를 외치고 ‘슬라바 보구(다행이다 라는 뜻도 있다)’는 언제 어디서나 툭 튀어나오는 말이다.

998년 키예프 루시(블라디미르 대공 통치)가 비잔티움 정교를 수용하면서 문화적 번영을 일으키며 그리스도교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군주가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나중에 그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이렇게 정교를 수용했지만 공후나 귀족계급, 혹인 돈 많은 상인들로 국한되었고 일반 민중들은 주술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 정교는 인민들의 범신론적인 자연관의 주술적이고 다신론적인 종교 의식 위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증축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즉, 러시아 사람들의 신앙세계는 범신론적인 자연관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유일신의 체계로 변화했다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슬라브 민족의 루시인들을 이교도적이라고도 부르지만 키예프 공국의 루시인 나름의 고유하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사물은 각기 다른 다수의 신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과 또 모든 사물 속에는 하나의 유일한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을 융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 성당에서 목격한 것은 여러 개의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 초를 사 불을 붙여 꽂아 놓는다. 제단 마다 용도가 달랐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제단,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제단,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제단이 각기 달랐다. 우리는 한 장소에서 모든 기도를 하지만 러시아 성당은 통상적으로 자신의 기도 제목에 맞는 제단을 찾아 기도하고 중앙으로 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한다. 필자는 처음 러시아 성당을 갔을 때 한국의 절을 찾아 온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부처님과 여러 보살들이 상생하며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는 신학생 때부터 길고 치렁치렁한 검정 제의와 검정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다. 신부가 되었을 시에 예배를 인도하고 장례식에 예배를 청할 때는 오랜 시간 단조로운 어조로 한없이 성경 구절을 읽으며 망자를 추모한다. 필자도 몇 번 장례식에 참가하면서 한 두 시간은 기본으로 서 있어야 했고 허리가 엄청 아팠다는 기억을 한다. 그리고 그 때 들은 이야기로는 신부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수고비를 준다고 했다.

필자는 옛 러시아 신부나 주교들의 의상이 실크로 만든 제의에 보석이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박물관에서 보았다. 진주와 에메랄드는 기본이었고 금실, 은실로 수놓아져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이는 아마 빈자(貧者)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제의를 만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