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심, 왜 '임영록·이건호' 경징계로 낮췄나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6월26일 시작돼 2개월 가까이 진행된 KB금융에 대한 징계 수위는 예상과 달랐다. 당초 금융감독원은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통보했지만 정작 금융감독원장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는 '중징계'는 무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모두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를 내렸다. 두 사람 만이 아니라 중징계를 통보받은 KB금융 임직원 중 상당수의 제재 수위가 한 단계씩 낮춰졌다.


제재심은 왜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제재 수위를 감경했을까.

KB금융과 국민은행이 제재를 통보받은 사안은 주전산기 교체, 국민주택채권 횡령, 동경지점 불법대출 등 3건이었다. 고객정보 유출 문제도 있었지만 제재 근거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면서 추후 검토키로 하고 이미 지난 14일 제재심에서 보류됐다.

이중 임 회장은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의사 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이 행장은 주전산기 교체 문제와 더불어 동경지점 불법 대출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가 통보됐다.

KB금융에 대한 제재가 결론을 맺기까지 6차례의 제재심이 열렸고, 기간으론 57일이 걸렸다.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 걸렸지만 정작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데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90여 명이 넘는 임직원들의 소명을 듣고 문답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만큼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데 격론이나 큰 이견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의미다. 제재심 위원들은 소명과 문답이 모두 끝난 후 별도로 모여 의견을 조율한 후 90여명의 임직원에 대해 일괄해서 제재수위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심 관계자는 "중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수였다"고 전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는 최종 기종 선정이 끝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경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 검사국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KB금융이 개입해 의도적으로 컨설팅 보고서를 비롯해 내부 의사결정에 참고할 자료를 조작한 증거가 확인됐고 국민은행 전산 담당 임직원들도 KB금융의 요구에 따라 수정했다고 진술한 만큼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지만 제재심 위원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고서를 수정하는 것은 통상 있는 일'이라며 중징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특히 의사결정 과정에서 업체와 유착 등 비위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경징계의 주요한 이유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임직원 중 누군가가 IBM이나 유닉스와 유착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건으로 '직무정지'의 중징계를 통보받았던 김재열 KB금융 전무(CIO, 최고정보관리책임자)는 '감봉'으로 제재 수위가 한 단계 감경됐다.

이 행장의 또 다른 제재 이유였던 동경지점 불법대출은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나왔다. 제재심 위원들 전원이 이 행장이 당시 리스크관리 담당 부행장이었지만 해외지점에서 발생한 불법대출을 책임질 위치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가 낮아진 것과 달리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해 통보된 '기관경고'는 원안대로 통과됐다. 수천억원대의 불법대출과 100억원이 넘는 횡령, 그리고 내부 분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등이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