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계는 넓다" 외치는 김우중, 마지막 꿈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기념공연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세계시장으로 우리 활동 반경을 넓히면 갈등할 일보다 서로 도우면서 커갈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1989년 여름 출간돼 6개월만에 밀리언셀러에 오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판에 박힌 설교가 아닌,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나아갈 길을 보여 준 이 책은 많은 젊은이들이 가슴에 야망을 품게 했다.


책이 출간되고 10년만에 김 회장의 '세계경영'의 꿈은 꺾이는 듯했다. 대우그룹은 1999년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체됐다. 김 회장은 오랜 해외 체류 생활을 하다 귀국해 재판과 수형생활, 사면복권 등을 거치게 된다. 그 사이 대우그룹은 부실기업의 대명사가 됐고, 김 전 회장은 실패한 경영인으로 낙인찍혔다.

해체 이후 다시 15년. 속편 격의 책이 발간됐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필한 김우중과의 대화록이다. 김 전 회장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긴 이 책에는 IMF금융위기 과정에서 대우그룹이 해체된 데 대한 항변도 담겨 있지만,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세계로 나가라'이다. 그래서 제목도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다.

현재 김 전 회장의 '비공식 직함'은 글로벌YBM(Young Business Manager) 이사장 겸 교장이다. 그는 전직 대우맨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통해 2012년부터 글로벌YBM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동남아에 뿌리를 내려 국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는 젊은이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현재 베트남에서 글로벌YBM 3기생 75명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벽부터 저녁까지 베트남어와 영어, 베트남 문화와 역사, 법회계 등을 가르치고 체력단련을 시킨다. 이들은 '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로 다시 태어나 베트남 현지에서 취업할 예정이다. 5년 내에 500명까지 배출하고,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미얀마에도 글로벌YBM 과정을 만들 계획이다.


'글로벌YBM 백만 양성론'은 김 전 회장의 새로운 꿈이다. 20∼25년 내에 동남아 국가에 한국의 젊은이 100만명을 취업시키겠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성공 사례가 만들어지고 주변의 인정을 받게 되면 동남아 5개국에서 1만명 정도는 키울 수 있습니다. 1만 명 성공해서 젊은이들을 10명씩만 데려다 쓴다면 10만 명이 되고, 그들이 또 성공해서 10명씩을 국내에서 데리고 나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세요. 나는 이런 꿈을 갖고 실현시키려고 해요."

젊은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나가야 한다는 이유는 명쾌하다. "우리는 땅이 좁고 그나마 산이 70%인 나라에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데 숙명적으로 해외에 나갈 수밖에 없어요. 화교나 유태인들처럼 밖에 나가서 성공하면 네트워크가 돼서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됩니다. 그런 비전을 갖고 20년 후에는 꼭 된다는 확신을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해요."

이는 한국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면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중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성공하면 국내 실업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한국 경제가 튼튼해져요.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버림받은 그지만, 아직 한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실천하고 있다. 사업가로서 재기는 불가능해졌지만, '세계경영'에 대한 그의 꿈은 아무도 아직 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