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생활 정보활용에 동의하라고?" 일본계 中企 '논란'

H사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동의서 사본

플라스틱 착색제와 첨가제를 제조·판매하는 한·일 합작사인 중소기업 H사가 직원들에게 개인 이메일을 비롯해 스마트폰의 정보를 취합하는 것은 물론 정당의 가입과 탈퇴·정치적 견해·성생활 등의 내용까지도 회사가 활용하는데 동의할 것을 요구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 대기업인 T사가 최대주주다. 최근 새로 취임한 일본인 대표이사가 영업비밀 누출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직원들에게 사인을 받고 있으며 이를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직원들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외국계 중소기업의 노사간 불협화음을 드러낸 방증이란 지적이 나온다.


29일 벤처 및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에 본사를 둔 H사는 최근 1~2개월 전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동의서에 서명을 받고 있어 일부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H사는 회사의 데이터 유출 방지를 위해 동의서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 대상 범위가 넓고 사생활 정보까지 포함돼 정서적 반감을 일으키고 있다.

입수한 동의서 사본을 살펴보면, 회사로부터 사용을 허락받은 전산·통신시스템, 컴퓨터 등 정보처리기기(노트북, 태블릿 PC 등을 포함)와 정보저장매체(CD-ROM, USB 메모리 등), 이메일 계정을 통해 송·수신한 내용 일체를 모두 회사 소유임을 규정했다. 통신시스템과 정보처리기기에는 개인의 스마트폰도 포함될 수 있다. H사는 이러한 정보들을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열람하거나 검색,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뿐 아니라 직원들과 연계된 제3자의 개인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고, 이를 회사의 보안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H사는 '민감정보'의 처리에 대한 동의까지 요구하고 있다. 문서에는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 및 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와 범죄경력자료 등 민감정보도 개인정보 수집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와 같은 개인정보가 본인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H사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동의서 사본

그러면서 H사는 이러한 요구에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동의하지 않으면 고용계약을 체결·유지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회사의 요구를 승낙하지 않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부담을 느낀 상당수 직원들이 동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대표는 "직원뿐 아니라 제3자인 주변인들의 정보를 접근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건 지나친 요구"라며 "더구나 직원들의 사상이나 정치성향까지도 정보 수집의 대상에 명시한 건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로 지적했다.

국내 IT(정보기술) 대기업의 경우 △회사로부터 접근 권한을 허가받은 장비만 사용 △정보의 비밀을 유지 △업무파일 및 통신내용의 비밀을 준수한다는 등 간략한 내용만 포함하고 있다. S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반감을 고려해 기본적인 내용만 적시하고 내부 감사나 준법감시 강화를 통해 회사의 정보 유출을 막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례적인 사안으로 보고 있다. 안전행정부 개인정보보호과 관계자는 "회사가 정보 수집의 목적을 자세히 소명해야 하는데 H사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며 "동의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내용도 과도해 이를 보편적인 사례로 인정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H사 고위관계자는 "도료기술 일부가 경쟁사에 유출되는 사례가 발생해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과 같은 물품에 대해서만 정보 취합을 하겠다는 내용이었고 거부한다고 해서 해고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법무법인의 법률 자문을 거쳤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법무법인도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을 토대로 회사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내용을 포함한 것으로 위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