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아버지의 재취업,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

#부산 동래구에 사는 손 모(71)씨는 '택배 할아버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퇴직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손 씨는 늘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다보니 건강도 더 나빠졌다.

그러나 70대의 손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적었다. 손 씨는 수소문 끝에 택배 배송을 알게 됐고, 자신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씨는 "택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물건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이 일에 보람이 생겼다"며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직장과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이 받쳐주는 한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 관악구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 이 모씨(40)는 한 때 대기업 인사팀의 잘 나가던 워킹우먼이었다. 그러나 결혼 후 육아 문제로 부득이하게 사직서를 내야 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일을 더 하고 싶다는 의지가 한결 커졌다.

그러나 '아줌마'를 선뜻 받아들이는 기업은 찾지 못했다. 이런 이 씨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대기업에서 경력 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리턴십 제도를 공모한 것이다. 두 달 간의 리턴십을 통해 능력을 다시 깨운 이 씨는 임원 면접 등을 거쳐 '정직원'으로 재입사했다. 이씨는 "아줌마에게 재취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출근길이 더 없이 신난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원이 물건을 주문자에게 전달하며 활짝 웃고 있다./사진=CJ대한통운제공

판에 박힌 고용방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속속 늘고 있다. 식음료업과 서비스업 등 탄력적인 일자리 만들기가 가능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버세대와 경력단절 여성까지 껴안는 '신고용' 창출이 눈길을 끈다. 이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재취업은 침체된 내수 살리기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버·여성 취업 적극…내수기업의 노력
CJ대한통운은 서울과 부산, 대전 등 23개 시·구 단위에서 49개의 실버택배 거점을 가동하고 있다. 이 거점에는 360여 명의 '시니어 인력'이 배송원으로 일하고 있다. 실버 배송원들은 하루 4시간 정도 근무하고 교대를 한다. 1인당 하루 50~60여 개의 택배를 배송하는데 물량에 따라 월 150만원까지도 번다.

특히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이 모씨(64)는 "손자들 용돈도 줄 수 있고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아도 돼 너무 좋다"며 "이 나이에도 퇴물 취급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택배 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도 재능 기부를 통해 '실버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다. '실버 바리스타'인 노 모씨(68)는 전업주부로 사회 경험이 전무했지만 커피를 통해 인생이 달라졌다. 노씨는 만 60세부터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한 달 간의 고된 바리스타 과정을 끝내고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 '카페 이스턴'에서 일하고 있다.

이 카페는 스타벅스의 1호 재능기부카페로 노씨는 원두 종류별로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방법은 젊은 바리스타보다 한 수 위로 인정받고 있다.

이마트도 정년 퇴직자에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며 신고용 창출에 앞 장 서고 있다. 최근 캐셔직(계산원) 정년 퇴직자 20명 중 업무 복귀를 원하는 12명을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재고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마트는 현재 캐셔직 1500여명을 시간제 일자리로 일하게 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과 똑같은 복리후생 혜택을 받는다.

◇수출기업 앞지른 내수기업 고용유발효과
내수기업들의 고용 유발은 수출기업보다 한결 적극적이다. 신고용 효과도 두드러진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20대 그룹의 고용유발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비스와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는 내수기업의 고용 노력은 수출 주도형 제조업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그룹별 고용유발계수(10억원의 재화를 산출할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2013년 기준)는 신세계와 CJ 같은 내수·문화 콘텐츠 그룹들이 각각 12.1명과 10.6명으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이들 그룹 매출액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각각 1.2% 수준이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현대차(6.6명)와 LG그룹(5.7명)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특히 이들 그룹은 노인과 여성에게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 사회적 약자의 경제적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내수기업들의 일자리 마련은 아직까지 그 효과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한 내수기업 관계자는 "내수기업의 고용 창출은 수출 기업보다 월등히 높은데 정부 지원은 수출기업에 비해 와 닿지 않는다"며 "내수기업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