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못 채우면 월급 깎여…눈물의 증권맨

#HMC투자증권 영업직 김 대리는 이번달에도 월급 통장을 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전달 실적에 따라 월급이 깎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적이 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월급 지급일만 되면 가슴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월급날이 되면 누구는 월급이 삭감됐다더라, 누구는 인센티브를 받을 것 같다 하는 소문이 지점 안에 퍼지곤 한다.

구조조정 삭풍이 분 뒤에도 증권가는 스산하기만 하다. '직장은 전쟁, 나가면 지옥'이라고 '짤린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팍팍한 전쟁터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구조조정 이후 급여 체계가 180도 바뀌면서 '실적'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됐다. 한 때 억대 연봉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던 증권 영업직은, 증권업 불황 속 실적의 칼날에 떨 뿐이다.


◇성과 연동제, 적정선은 어디인가=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HMC투자증권은 올 상반기 성과 우수 직원들 44명에게 1인 평균 280여만원씩, 총 1억2394만원을 지급했다. 회사가 잘 나가서가 아니다. 이 성과급은 상반기 동안 실적을 채우지 못해 삭감된 다른 직원의 월급이 이전된 것이다.

HMC투자증권은 올해부터 강력한 성과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점 영업직원들은 전달 실적이 급여의 120%에 미달하면 그 다음달 월급이 25% 삭감돼 지급된다. 다달이 실적이 평가되고 이에 따라 월급이 변동된다. 이렇게 깎인 월급은 반기별로 결산해 실적이 우수한 직원에게 돌아간다. 올 상반기에는 목표 설정치를 초과 달성한 44명에게 분배됐다.

올해 상반기 동안 급여가 줄어든 직원은 총 31명. HMC투자증권측은 "월별 실적 미달로 급여가 깎여도 분기 실적이 기준액을 초과하면 미지급됐던 월급이 소급돼 지급된다"며 "그럼에도 분기 실적이 기준액에 미달하면 삭감된 월급이 실적 우수 직원에게 배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과를 올린 만큼 월급을 준다는 얘기는 얼핏 합리적이지만 실적 부진으로 월급이 깎인 직원들의 한번 꺾인 자존심은 회복되기 어렵다. 지점 분위기도 어수선해지고 있다. 한 직원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급여체계를 조정한 것은 이해하지만 급여를 25%나 삭감하고 이를 실적 상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데 대해선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아직 급여가 깎여본 적은 없지만 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골든브릿지증권은 지난해 말부터 아예 직급을 없앴다. 골든브릿지증권 노조는 회사측이 구조조정할 기미를 보이자 파업을 단행했지만 600여일만에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노사 합의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영업직은 직급을 없애고 기본급 200만원에 성과연동 연봉제를 받기로 했다. 대리, 과장의 개념을 없애고 모든 영업 직원들이 똑같이 기본급 200만원에 실적에 따라 월급을 더 받는 방식이다.

◇증시 부진에 지점 수 급감=증권사들이 이렇게 강도 높은 성과연동제를 시행하는 것은 지점 수익률이 낮아져서다. 증시가 횡보하면서 주식 거래량이 줄어들고 지점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브로커리지(증권 매매 중개)도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시장의 상장주식회전율은 236.14%로 전년 대비 106.21%포인트 감소했다. 상장주식 1주당 3.4번 거래되던 것이 2.3번으로 줄어든 것이다. 주식거래 위축으로 지난해 증권사들의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2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30%가 줄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국내 지점 수는 6월 말 현재 1344개로 연초 대비 132개가 줄었다. 정직원 수도 2만9250명으로 올 들어 2995명이 감원됐다. HMC투자증권이 지점 통폐합에 나서면 지점 수는 더욱 줄어들 예정이다. HMC투자증권은 현재 38개인 지점을 15개로 축소할 방침이다.

하지만 지점수 축소가 구조조정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올 상반기 20개던 점포를 5개로 통폐합하고 지난 5월부터 영업직을 추가 모집하고 있다. 통폐합 전 대비 100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점포를 거점으로 삼아 외부로 돌아다니며 발로 뛰는 영업을 하라는 의미다. 메리츠종금증권 노조 측은 "일정부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적절한 지점에 타협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메리츠종금증권 역시 실적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월급이 깎이지만 연간 기준으로 달성하면 못 받은 월급을 소급해 받을 수 있다.

◇ODS, 새로운 기회 될 수 있을까=증권사들이 내놓은 또다른 카드는 ODS(아웃도어세일즈) 부서 신설이다. 방문판매를 통해 신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 우리투자증권은 희망퇴직 접수 기간 중이었던 지난 5월20일, ODS 본부를 신설하고 60명을 발령했다. 우리투자증권 노조는 "ODS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발령을 낸 것은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고 반발했지만 회사 측은 "기존 영업점에서 성과가 다소 미진하더라도 새로운 직무에서 개선책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투자증권 ODS 부서 직원들은 약 두달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지난달 7일부터 수도권역별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HMC투자증권에서도 이날 ODS 부서를 신설하고 20명을 배치했다. 노명래 HMC투자증권 노조위원장은 "ODS팀의 운용계획 ,수익 인정 기준, 교육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등을 공지하지 않은 채 인사부터 냈다"며 "기준 없는 ODS 인사가 직원들의 회유, 협박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ODS부서는 신규사업 기반 확보를 위해 신설한 것"이라며 "기존에 영업수익 으로 평가하던 것을 ODS 조직에 맞는 기준으로 변경할 뿐 ODS 직원의 급여 는 기존 영업직원 급여체계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한 증권사 직원은 "전반적으로 업황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이 필요악일 수는 있지만 증시 호황기였던 지난 2007년부터 지점 수를 급격히 늘렸던 증권사들이 10년도 안 돼 수익성 저하를 직원 탓으로 돌리며 사람부터 자르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