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새 일자리 만들것..대기업 시장 뛰어들어야"



정경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우리가 지능형 로봇 강국이 되려면 다양한 로봇이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시장 수요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 이는 다시 우리의 로봇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정경원 로봇산업진흥원장은 정부가 먼저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쓰일 수 있도록 수요를 창출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이 같은 역할을 하는 데 진흥원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는 세계 최초로 로봇산업진흥법을 제정하고 전담 기관을 설립해 재정 지원을 하는 등 선제 대응해 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지원과 관심이 계속된다면 우리 로봇 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시기도 조만간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정 원장은 “프랑스의 경우 로봇 도입에 대해 설비고도화 지원 차원에서 자금의 10%를 지원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면서 “로봇 시장을 열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또한 민간 기업의 관심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로봇산업이 아직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이다 보니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다면서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시장에 진출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 등 세계 규모의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10년, 늦어도 20년 안에 로봇이 PC나 스마트폰처럼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차세대 먹을거리로서의 가치를 인지한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경쟁하듯 로봇산업에 진출하고 있는데 자칫 머뭇거리다간 시장 주도권을 내 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우리도 지금 자금력, 인력, 기술력을 두루 갖춘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시장에 적극 진입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의 로봇 플랫폼과 대기업의 콘텐츠, IT 기반 결합 등 로봇의 융합이라는 특성을 활용해서 다양한 상생 협력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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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로봇기술, 미국과 1.8년 차
우리나라의 로봇 기술 수준은 최선도국인 미국과 비교해 2009년 2.5년의 격차가 있었으나 지난 2013년에는 1.8년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미국, 일본, 유럽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라는 게 정 원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산·학·연 기술개발 분야의 협력으로 기술 수준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특히 기업의 연구개발(R&D) 참여 비중이 2008년 32.6%에서 2013년 54% 수준으로 크게 높아지면서 고무됐죠. 최근에는 연구 결과를 활용해 매출 증대와 수출 확대 등 실속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사회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한 선도형 R&D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지요.”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페퍼라는 로봇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로봇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에서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글로벌 IT 기업이 로봇 사업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으로 볼 수 있지만 시장이 당장 성장할 것으로 보는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페퍼 출시 이전에 비슷한 형태의 로봇을 개발해 출시한 중소 로봇기업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만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으로 대중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지요. 이 같은 경험을 고려하면 200만원이라는 제작 단가에도 못 미치는 파격의 공급 정책으로 시장을 먼저 열겠다는 소프트뱅크의 의지는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페퍼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실제로 최근 일본 시장조사 기관 MMD가 일본인 4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페퍼를 안다고 답한 사람은 70%에 육박했지만 구입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20%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격 수준과 실제 로봇가격 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해 정 원장은 앞으로 “로봇의 품질은 높이면서도 합리 가격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부품과 소재 개발 경쟁이 더 치열해 질 것”이라고 점쳤다.

정 원장이 당장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점치는 로봇 분야는 고령화 사회에 맞는 로봇 솔루션이다. “치매, 간병, 재활 분야에 투입·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로봇을 개발해 공급해야 한다”고 정 원장은 부연했다.
“세계 고령화 추세에 따라 노인 복지 및 치매·심리 치료 등 목적으로 인간-로봇 상호작용(HR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로봇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페퍼 이전에 개발된 노약자 심리치료 로봇인 ‘파로(PARO)’가 유럽 등지로 보급이 확대되고 있고, 국내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치매예방 로봇이 핀란드·덴마크 등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요. 유럽, 일본, 한국 등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심으로 HRI 기술을 활용한 로봇 개발이 꾸준히 확대될 겁니다. 우리도 향후 시장 성장에 대비한 집중 육성이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드론을 이용한 농약 살포, 수술 로봇 등도 전망이 밝다고 정 원장은 설명했다.


“로봇 개발이 성과를 거두려면 기업과 정부 모두 장기 차원에서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지금은 R&D에 최장 5년 동안 지원하면 사업이 종료되고, 지원을 더 받으려면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R&D와 상용화 두 단계가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봇 개발 과제의 특성을 고려해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시점입니다.”

로봇 확산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 가능
로봇이 확산되는 것과 관련해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큰 저항은 바로 일자리 관련 이슈다. 이미 자동화 등으로 고용 감소 효과가 크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로봇 확산이 자칫 일자리 축소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 세계에서 제조 공정에 로봇 도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의 논란이 계속돼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로봇이 창출하는 직·간접의 긍정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2012년 국제로봇협회(IFR)가 실시한 국가별 로봇 활용도 분석에 따르면 로봇 활용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국은 제조업의 고용유발 계수가 금융서비스의 두 배 이상이라는 노동부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침체된 자국의 제조업 부흥을 위해 로봇 도입을 가속시키는 정책(AMP)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로봇 도입 비용을 지원하고 중소 제조업용 로봇을 개발하는 등 로봇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은 로봇산업의 고용 유발 효과가 SW, 섬유의류 등 25개 정책 산업에서 4위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또 부가가치, 취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로봇산업이 제조업 평균보다 높은 유발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로봇이 생산 현장에서 일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는 하지만 전·후방 연관 산업에 긍정의 파급 효과를 주면서 줄어드는 인력을 능가하는 수준의 고용을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생산성 향상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도 산업 현장의 로봇 도입은 더 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로봇 시장에서 우리나라만의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는 있을까. 자칫 제대로 된 로봇을 생산하지 못한 채 최대 로봇소비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로봇 보급 대수를 측정하는 로봇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로봇 제품의 유지·보수는 외주를 주는 등 실제 활용 능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차별을 둘 수 있는 로봇 분야를 묻는 질문에 정 원장은 “다른 기술과의 융합에서 찾되 그 중심은 IT 기술과 접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IT 기술은 이미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시장 측면에서도 글로벌 무역수지 2위, 휴대전화·TV 등 주요 가전 품목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정보통신 발전지수 1위 등 다양한 지표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어요.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클라우드 기술,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분석 등 IT 기술과 로봇 기술의 융합으로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클라우드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을 적용한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지요.”


정 원장은 기술 융합 가속화를 위해 정부도 제2차 지능형로봇 기본계획의 핵심 키워드를 ‘로봇과 타 산업과의 화학성 융합’으로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부처와의 긴밀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농업실용화재단, 방사청 등 다양한 부처 담당 기관과 정책협의회를 만들어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농업과 국방 등 현업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렴해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송은지

정경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1957년 제주 출신으로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을 시작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우정사업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정보기술과 융합산업 분야의 요직을 거쳤다.
지난해 9월 2대 로봇산업진흥원장으로 부임한 이래 로봇산업활성화를 위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로봇산업 목차
[로봇산업①] 정경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로봇이 새 일자리 만들것"
[로봇산업②]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로봇클러스터 내년 5월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