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면도 좀 하세요!” “관심 감사합니다.”

8월 중순, 네이버 공익나눔 캐스트에 “나다운 결혼식 꿈꾸세요? 형편껏 ‘참웨딩’하세요”라는 제목으로 한 커플의 결혼식이 소개됐다.

이 글이 오른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블로그엔 ‘멋지다’, ‘부럽다’는 네티즌들의 찬사가 굴비처럼 달렸다. 예비 부부들은 “우리도 이렇게 하고 싶지만 양가 어른들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한 네티즌이 신랑 사진에 딴지를 걸었다.


“면도 좀 하세요.”

‘우주인’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신부가 신랑 대신 답글을 달았다.

“저희는 평소 좋아하는 자기를 지키자 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면도하지 않았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결혼식을 치렀기에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됐을까?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스페이스류에서 8월 2일 진행된 결혼식 모습.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임태훈 작가

◇이 부부의 결혼식 3원칙 "무리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하자, 우리답게 하자"

인터넷에서 ‘볏우’라 통하는 신랑과, ‘우주인’이라 불리는 ‘신부’의 결혼식이 8월 2일 열렸다. 결혼식장은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행사장, 점심은 제철 비빔밥.

식장엔 화환 대신 지인들의 축하메모가 하객을 맞이했다. 신랑은 평소처럼 수염 달린 얼굴 그대로, 신부는 친구가 만들어준 모시한복을 입고 입장했다.

주례는 없었다. 대신 양가 부모가 무대에 올라 그동안 얼마나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했으며 때론 얼마나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어 미안했는지 속마음을 고백했다. 눈물을 흘리는 하객, 박수를 치는 하객.

신랑, 신부가 아내와 남편으로서 책무를 선서하는 순서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신랑이 말했다.

“나는 신부에게 평생 동안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도록 최신의 고무장갑을 선물하겠습니다.”

신부가 답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 고무장갑을 사랑하는 신랑에게 끼워주는 아내가 되겠습니다.”

혼주와 하객들은 울고 웃고 박수 치며 서로 껴안았다. 평소 우리 삶의 모습을 닮았기에 오히려 낯선 결혼식에 대해 신랑, 신부는 하객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는 결혼식을 준비하며 다음의 3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무리하지 말자. 둘째, 자연스러워야한다. 셋째, ‘우리다움’입니다. 이 결혼식은 우리의 3가지 원칙을 담아낸 결과물입니다.”

'볏우'와 '우주인'은 결혼식에 화환 대신 축하메모를 받았다.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사진= 임태훈 작가

◇부부의 꿈 이뤄준 최게바라 꽃소풍 소풍가는고양이 등 사회적경제업체들

하지만 원칙을 지키려는 신랑신부의 의지가 제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혼은 인륜지대사라 불릴 만큼 큰 행사다.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치르기 어렵다.

이 결혼식의 뒤에는 소셜벤처 최게바라 기획사와 꽃소풍, 피치노, 소풍가는고양이 등 사회적경제 업체들이 있었다.

기획과 진행은 최게바라기획사가 맡았다. 이 회사의 최수민 디렉터의 말을 빌자면, 이들은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신부를 닮은 결혼식을 위해 마포구의 빈병수거를 매일같이 하며 에코웨딩 기획자가 되었다”.

신부의 부케를 포함해 결혼식장을 수놓은 꽃 장식은 꽃으로 행복을 나누는 비영리커뮤니티 ‘꽃 소풍’ 작품이었다. 생화뿐만 아니라 종이로 접어 만든 꽃송이는 보기에도 좋았고, 하객들의 답례품으로도 좋았다.

사회와 반주는 ‘피치노(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아이)’가 맡았다. 그 역시 청년 사회적 기업 육성 사업의 지원을 받아 ‘방뮤즈’를 운영해온 청년 뮤지션이다.

피로연은 사회적기업인 ‘소풍 가는 고양이’가 맡았다. 주 메뉴는 비빔밥. 최 디렉터는 “피로연 식사에는 꼭 고기가 필요하다는, 무국에 들어가는 무는 작은 네모이길 원한다는 신랑의 요청에 ‘소풍가는 고양이’는 밤새 무를 손질했다”고 전했다. 하객 약 200여명이 온 이 결혼식을 치르는 데에 든 비용은 채 1000만 원이 넘지 않았다.

사회적기업 '소풍가는고양이'가 마련한 결혼식 비빔밥.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임태훈 작가

최게바라기획사의 최윤현 대표는 “어떤 형태의 결혼식을 올릴지 신랑신부랑 상의한다”며 “가장 자기다운 결혼식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감동을 주는 결혼식을 원하고 누구는 진지한, 또 어떤 이는 유쾌하고 재미난 결혼식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결혼식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거의 똑같습니다. 자기의 이야기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고 그 의미들이 하객들과 부모님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결혼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주변에 많은 친구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첫째, 너무 재미가 없었다. 둘째, 형식에 치우쳐 결혼식의 진짜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셋째, 그런데도 비용은 너무 많이 들었다.

◇평균 결혼비용 둘이 합쳐 ‘1억원’...“체면 때문에”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2년 이내 결혼식을 치른 결혼당사자 및 혼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들은 결혼에 1인당 평균 5198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자 평균은 5414만 원, 여자 평균은 4784만 원이었다. 두 사람 비용을 합하면 1억 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주택 등 신혼살림 마련비용을 뺀 금액이다.

가장 높은 비용을 일으킨 항목은 예물과 예단으로 평균 737만 원, 665만 원이었다. 피로연 식대도 573만8000원으로 결혼지용을 높이는 요소였다. 결혼식 자체비용보다는 예물, 예단, 피로연 등 ‘체면’을 차리는 비용이 더 큰 셈이다.

최윤현 최게바라기획사 대표. 사진제공=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임태훈 작가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85%는 ‘결혼의 호화사치 풍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남만큼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는 의식이 가장 큰 요인(27.6%)으로 지적됐다. ‘물질만능의 사회풍조(24.6%)’, ‘사회지도층의 과시적 혼례(21.5%)’, ‘건전한 결혼모델 부재(17.4%)’도 원인으로 꼽혔다.

최게바라기획사는 이러한 결혼문화에 ‘참 웨딩’이라는 새로운 모델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청년들이여! 결혼문화를 바꿉시다’가 모토다. 이 아이디어로 최게바라는 지난해 11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2013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최게바라가 그동안 기획한 세 번의 결혼식은 모두 신랑신부의 상황에 맞춰 형편껏 치러졌다. 지난 6월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노부부를 위해 무료로 ‘마침내 열리는 따뜻한 결혼식’을 열기도 했다. 식장은 상암 월드컵경기장. 많은 언론이 이 결혼식을 보도했다.

“저는 결혼식이라는 창문을 통해 인간애의 회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분들에게 결혼식을 선물해 드리는 프로젝트를 운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인민군과 국군의 토크쇼, 광복절 청춘해방군 행진..."위트로 문제 풀자"

최게바라기획사는 결혼식 문화뿐 아니라 일상 속 또 다른 문화 장벽에도 도전하고 있다. 남과 북의 문화 장벽 말이다. 최 대표는 “올해 들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하는 토크쇼”라고 설명했다.

두달에 한 번 여는 남북청년 토크쇼에선 북한의 새터민과 남한 청년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서로 얘기를 나누며 사고의 벽을 허문다. ‘군대’라는 주제로 인민군 출신의 북한 청년과 남한의 군인이 함께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8월15일에는 청년 15명이 청춘해방군의 복장으로 거리에 나서는 행사를 벌였다. 최 디렉터는 “재미 없고 딱딱한 광복절이 아닌 청춘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두근두근 설레는 광복절을 만들고 싶었다”며 “기존 광복절이 왜 청년들에게 낯설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도 긴 토론을 했다”고 말했다.

“최게바라라는 우리 회사 이름은 혁명가 ‘체게바라’의 특징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혁명적이면서도 위트 있게,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다. 그러니까 꿈이다.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밤에 꾸는 꿈과 미래에 대한 꿈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들의 목표는 어쩐지 허황된 청춘시절의 꿈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어제 상상하고 오늘 기획하고 내일 실행에 옮긴다'는 최 대표의 말처럼, 이들은 실행하니까. 실행은 꿈을 향한 출사표다.

"많은 상상을 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실행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실행하는 청년들이 되고자 합다. 저는 청년들의 강한 힘과 잠재력을 믿고 있어요. 청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3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김정자-박영찬 부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편지를 낭독한 아들이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있다 / 사진제공=최게바라 기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