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업무 적응 못해 자살한 형사, 공무상 재해 아니다"

강력계 형사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라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무가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조용구)는 숨진 형사 A씨의 아내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2006년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된 A씨는 지구대와 파출소 근무를 거쳐 2012년 1월 수사과 강력계에 배치됐다.

동료 경찰관 등의 진술에 따르면 평소 내성적이었던 A씨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동안 성실한 업무처리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강력계에 배치된 뒤로는 주변에 '적성에 맞지 않고 업무 부담이 많다'고 말하는 등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강력계에서 현장출동, 잠복근무 및 탐문수사, 피의자 검거, 시신수습 업무를 맡았던 A씨는 결국 2012년 5월쯤 상사에게 "파출소로 인사조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 상사는 같은 해 7월 하순에 예정된 정기인사에서 파출소로 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A씨는 이후에도 동료에게 '강력팀에서 (파출소로) 전출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현재 상태로는 파출소에 가도 일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등 불안에 시달렸다.

부담을 이기지 못한 A씨는 결국 같은 달 대구 한 모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농약을 삼켰고,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이 공무를 수행하며 발생한 스트레스 때문에 적응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A씨는 개인적인 성향 등 공무와 무관한 이유 때문에 숨졌다고 보는 것이 의학적인 소견"이라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불복한 A씨 아내는 지난해 4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업무 시간이 기본근무 시간을 훨씬 초과했고 업무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점 등을 인정해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뒤집고 공무원연금공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며 "근로자가 업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생했고 우울증이 자살 동기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서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아울러 A씨가 숨지기 직전 신경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서도 정신과적으로 심각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던 점, 농약을 삼킨 직후 모텔 사무실을 찾아가 '119에 구조해달라'고 요청한 점 등을 이유로 "농약을 삼킬 당시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