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순교자'처럼…유병언 발인식에 '세월호'는 없었다

31일 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의 발인이 구원파의 총본산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날 오전 금수원 안으로 조문객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스1

"명찰 보여주세요. 없으면 지역 별로 모여 들어가세요"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례식 이틀째인 31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본거지 안성 금수원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이날 오전 10시 발인을 앞두고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이 입구 100m 전부터 호루라기를 불며 늘어섰다.


금수원 정문 입구에서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구원파 관계자들이 지역과 성명이 적힌 명찰을 확인했지만 워낙 많은 성도들이 동시에 입장해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전국 각지서 모여든 3000명 이상의 신도들은 가족 단위, 지역 단위로 함께 입구를 통과했다.

유 전 회장의 빈소가 안치된 대강당은 금수원 입구에서 10분여 거리에 위치했다. 상주인 장남 대균씨와 아내 권윤자씨 등 일가족들이 빈소 앞에 자리잡은 가운데 수천명의 신도들은 대강당 매트에 앉아 먼발치서 발인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대강당 정면 대형 스크린에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뉴욕과 프라하, 피렌체, 모스크바 등에서 진행된 전시회 등 유 전 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사진이 번갈아 게시됐다. 유 전 회장이 태권도를 선보이며 체력을 과시하는 모습, 카메라를 든 모습, 가족과의 행복했던 일상사진도 포함됐다. 신도들은 "저 아이가 (장녀) 섬나"라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의 양쪽 스크린엔 '대나무', '동무야 친구야 벗들아', '찬바람에 흔들려도' 등 그가 생전에 지은 시 수십 편이 번갈아 게시됐다.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클래식 음악이 장내에 흘렀다.

구원파의 본거지로 알려진 경기 안성 금수원이 대강당에 차례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례식장 내부를 30일 공개했다. 이날 금수원에는 신도 수천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금수원 제공

"향아 향내야 향내음아 더 멀리 더욱 멀리 날아라…(시 '아해' 中) 받은 사명과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던 아해 유병언 회장님을 하나님 품으로 보내드릴 순서를 진행하겠습니다."

오전 10시10분쯤 발인식이 시작되자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발인식에서는 구원파 고위 관계자와 지인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않았으며 다수의 신도들이 훌쩍이며 눈물을 쏟았다.

관계자들은 발언 도중 유 전 회장과 구원파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의식한 듯 "엄청난 거짓말과 악한 말들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의 악한 말들을 견뎌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그러나 이들은 "옥에 갇혀 죽을 지경이었던 바울의 교훈을 사도행전 16장에서 본받아야 한다", "어린 소년 다윗이 그 민족을 위해 골리앗과 어떻게 싸웠는지 배워야 한다"며 간접적으로 죄 없음과 억울함을 내비쳤다. 외부의 비난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다졌다.

유 전 회장의 애국심에 대한 칭송도 이어졌다. 한 관계자는 "아해 유병언 회장님을 존경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대학 1학년 때 내 조국, 내 국토,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들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말씀을 하셨던 것 때문"이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국토와 내 나라를 사랑하고 내 민족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강조했다.

유 전 회장의 약력 소개는 긴 시간 상세하게 설명됐다. 진행자는 "학창시절 이미 예술가 소질을 인정받았고 무술인으로서의 기량도 길렀다"며 "1962년 대구 YMCA에서 미국 선교사 말씀을 듣다가 거듭난 이후 그토록 좋아했던 그림도 포기하고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나서 1000회가 넘는 강연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1975년 사업을 시작해 수많은 발명을 했다"며 "인정받은 제품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과 세계가 함께 하길 원하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보호 운동에도 앞장서고 5개의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170여개의 표창장을 받았다"며 "1991년 오대양 자살사건의 배후로 지명돼 억울하게 4년여 격리된 삶을 살았으나 이 시간조차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귀하게 썼다"고 칭송했다.

이들은 "기업가였고 발명가였으며 이웃의 건강한 삶을 돕는 봉사자이자 조언자였고 글 쓰고 사진 찍는 작가였던 아해 유병언 회장님은 2014년 쉼 없었던 육체의 삶을 멈췄다"며 장황한 약력소개를 마무리했다.

특별히 발인식 말미엔 유 전 회장의 삶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컨셉으로 정리한 슬라이드가 상영돼 눈길을 끌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봄은 어리다', '여름은 젊다', '겨울은 백발이 되어 조용하다' 등의 테마에 유 전 회장의 청년 시절 흑백사진부터 노년기 사진이 한 편의 예술작품처럼 편집해 방영했다. 마지막 슬라이드에는 "세상이 진실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의 그림과 시를 나눌 것입니다"는 문구가 적혔다.

다수의 성악가들의 독창과 중창, 연합 합창단의 찬양, 유 전 회장의 생전 설교가 이어진 발인예배는 1시간 30여분만에 끝났다. "세상이 그분의 진실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질 때 우리는 그분 아해의 참 생각과 참 정신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교제 속에 복음 속에 영원히 같이 하실 것입니다."

31일 오전 구원파의 본거지인 안성 금수원에서 발인식이 끝난 후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뒷산 장지로 운구되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수천명의 신도들은 곧바로 대강당 밖으로 나가 뒷산 장지부터 대강당 입구까지 두 줄로 서서 대기했고 운구 행렬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 신도들은 눈물로 마지막 길을 따랐다. 이후 신도들은 다시 대강당 안으로 들어와 영상을 통해 장지로 향하는 유 전 회장을 침착하게 지켜봤다.

어떤 충돌도, 소란이나 무질서도 없었다. 어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도 없었다. 장례식장 어느 곳에도 '세월호'는 없었다. 금수원은 대한민국 속 '다른 세상'이었다. 이들은 발인식이 끝난 오후 1시부터 내부 행사를 진행 중이다.

한편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사흘간 구속집행정지를 받은 장남 대균씨와 아내 권윤자씨 등 일가족 4명은 이날 저녁 8시까지 인천구치소로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