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대신 자소서?…취업준비생들은 머리 깨진다

#"그동안 공채에선 지원자들에 자격증·어학성적 등을 기재하도록 했지만 이번 하반기 공채부터 관련 정보를 받지 않는다. 솔직히 무슨 기준으로 수만 명에 이르는 지원자들을 평가해야 할지 고민이다."(시중은행 채용담당자 L과장)


"지원분야와 관련된 경험이나 활동을 쓰라고 하는데 솔직히 경험이 전무해서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업무가 완전히 다른 분야 인턴 경험이라도 쓰는 게 맞는 건지 헷갈린다."(취업준비생 K씨)

대기업·금융권 등 구직자들이 많이 몰리는 기업을 중심으로 자격증·어학성적 등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스펙 초월 채용'이 이번 하반기 공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소 1만~2만 명의 이력서를 검토해야 하는 현장의 인사팀이나 관련 직무 경험이 없는 구직자들 모두 혼란에 빠졌다.

일단 현장에서 내놓는 답은 '스토리텔링'을 겸비한 자기소개서 작성이다. 지난 3일 대졸 신입 공채 서류 접수를 마감한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자격증·봉사활동·해외연수·인턴 경력 등 스펙을 기재하는 난을 입사지원서에서 삭제했다.

대신 자기소개서 항목으로 △국민은행이 지원자를 선택해야 하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스토리 △입사 뒤 하고 싶은 분야의 일과 그 일을 위해 준비한 경험·노력(학업생활 제외) △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이유 △입사 뒤 예상되는 어려움과 극복방법 △지원자가 생각하는 '은행'과 국민은행의 나아갈 방향 등을 각각 600자 이내로 기술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은행은 서술형 자기소개서 이외에도 약술형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데 두 형식을 모두 작성하면 분량은 4200자, 200자 원고지 21매에 달한다. 신한은행의 공채 역시 분량이 방대해 구직자들에게 아예 '신한문예'로 불리고 있다. 지난 상반기 신한은행의 자기소개서 요구량은 200자 원고지 약 40매 분량이었다.

지난 4일 고려대학교에서 하반기 공채를 앞두고 열린 채용박람회의 모습.

◇졸업생 선배 찾아 자기소개서 첨삭지도…사교육업체 찾기도

이 같은 자기소개서 문항을 두고 취업준비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취업준비생 P씨는 "해당 기업만을 바라보고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들어간다"며 "차라리 기업들이 이력서·자기소개서를 일원화해 성적순으로 뽑아가면 좋겠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구직자들은 공채원서를 돌려보는 취업스터디를 결성하는 것은 물론 각 학교의 경력개발센터 등을 통해 취업컨설팅을 받거나 지원회사에 취업한 졸업생 선배들을 찾아가 첨삭을 부탁하고 있다.

40개 기업에 지원해 18곳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다는 한 금융권 신입사원은 "지금 입사한 곳의 서류전형이 10~15배수로 까다로운 편이라 자기소개서를 1년 전부터 계속 썼고 현직 선배들에게 첨삭 지도를 받았다"고 전했다.

졸업생이나 취업스터디 등에서 도움을 얻기 힘든 구직자들은 아예 돈을 들여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거나 첨삭지도를 해주는 사교육 업체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들 업체는 적게는 장당 7만~10만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받고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 준다.

현장에서 자기소개서를 받아보는 인사담당자들은 수준이 고만고만한 수만 명의 지원자들을 두고 형평성과 변별력 확보를 고민하고 있다.

한 공기업 인사담당자는 "1만명, 2만명이 지원했을 때 스펙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합격자를 선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만 스펙만으로 인재를 선발하지 않기 위해 지원자가 어떤 노력을 했고 강점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