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세탁기 파손 논란' 풀리지 않는 의문 5가지

독일 베를린의 자툰 슈티클리츠 매장 모습. 이곳에서 지난 3일 조성진 LG전자 사장이 삼성 세탁기를 파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조성진 LG전자 (92,800원 0.00%) 사장(HA사업본부장) 삼성세탁기 고의파손 혐의 사건의 공은 결국 검찰로 넘어갔다. 그러나 장외 설전은 여전히 뜨겁다.

삼성전자 (78,000원 ▲2,500 +3.31%)는 "사과는 커녕 거짓해명을 내놔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격앙하고 있고 LG전자는 "훼손 의도가 없었다"고 맞서며 날선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의 수사의뢰로 조만간 검찰수사가 이뤄지겠지만, 양측의 팽팽한 주장을 바탕으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되짚어본다.

◇1. 왜 1대도 아닌 5대가 잇따라 파손됐나=사건은 '유럽의 하이마트'격인 독일 가전양판점 자툰사의 베른린 유로파센터 매장과 슈티글리츠 매장 두 곳에서 두시간차로 각각 벌어졌다.

유럽가전전시회(IFA 2004) 기간 중이던 지난 3일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들 매장은 전시회와는 상관없는 일반 소비자용 판매 공간이다.


3일(현지시간) 오전 10시30분 슈티글리츠에서 삼성전자 크리스탈 드럼세탁기 3대가, 두시간 뒤 유로파센터에서 같은 제품 2대가 파손됐다.

유로파센터에서는 매장 직원에게 발각돼 현장에서 LG 연구원이 두 배인 4대 가격에 배상하며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추후 슈티글리츠 매장 CCTV 추가확인 과정에서 조 사장의 파손 장면이 뒤늦게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최고 엔지니어가 제품 파손이 될 만큼 힘을 가한 것도 그렇지만 1차례 파손이 됐는데도 여러 번 동일행위를 의도적으로 반복한 게 사실이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LG전자는 "현재까지 현지 경찰이나 슈티글리츠 매장이 어떤 연락도 없었다"고 파손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매장을 빠져나왔다는 뉘앙스로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슈티글리츠 매장에서 지난 5일 베를린 경찰에 고발했다"고 반박했다.

◇2. 실무진도 아닌 사장이 굳이 직접나선 까닭= 사장과 임원진이 해외 출장을 가서 현장 상황을 둘러보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앞으로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다만 특정 제품의 구체적인 상태 파악은 주로 실무진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LG전자도 "임직원들이 직접 그런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조 사장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사무직을 거쳐 사장으로 승진한 케이스가 아니다. 공고를 졸업한 뒤 세탁기 한우물만 파서 올라간 현장형 전문가다. '세탁기 장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신제품이 나오기 전 직접 손으로 제품을 다뤄보며 장단점을 파악해 개선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조 사장은 30년 이상 세탁기 개발에 참여해 이 정도 힘이면 도어 부분이 어떻게 파손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삼성세탁기 파손된 힌지 부분 /사진제공=삼성전자

◇3. 6월 한국시판 제품 왜 독일서 테스트?= LG전자는 "해외출장 시 경쟁사 현지향 제품과 그 사용 환경을 살펴보는 것은 당사는 물론 어느 업체든 통상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 속 제품이 이미 지난 6월 한국에서 출시된 제품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독일 매장 제품도 한국 판매 제품과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아무 때나 충분히 쉽게 입수해 실험해 볼 수 있는 셈이다.

굳이 먼 독일까지 가서 바쁜 시간을 쪼개 이미 스펙이 공개된 제품을 사장까지 나서서 테스트 했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연구소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구입해서 분해를 해보고 분석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이번 같은 케이스는 드물다"며 "대기업이 실험 제품 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의아하다"고 말했다.

◇4. 동일제품의 같은 부분만 콕, 이건 우연?= 공교롭게도 파손이 된 제품과 부분은 5대가 모두 같다. 삼성전자 크리스탈 드럼세탁기 힌지(도어 연결부분) 부분이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드럼 세탁기 내부에 손을 넣어보거나 도어를 여닫는 방식이 아닌 도어 연결부위에 성인 남성의 몸무게 이상의 압력을 가하는 내구성 테스트는 일반적인 측정방식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테스트라 하면 측정 기계를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구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특정 제품이 동일 형태로 파손된 것은 다분히 의도성이 깔려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삼성전자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외관상 잘 보이지도 않는 힌지 부분을 파손해 원래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전문가들이니 가능한 행위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5. 다른 제품들도 삼성 제품과 같은 테스트 했나= 삼성전자를 더 자극시킨 건 "다른 회사 세탁기들과는 달리 유독 특정회사 모델이 취약했다"는 LG전자의 해명이었다. LG전자를 비롯한 밀레·보쉬에 비해 제품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취지로 읽힐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아직 당일 매장에서 조 사장과 임원진이 밀레·보쉬 등 경쟁사 세탁기 제품의 힌지 부분을 누르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CCTV로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만일 조 사장이 삼성전자 제품에만 충격 테스트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고의성이 확실히 입증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해당 파손된 제품 가운데 1대를 독일에서 공수해 검찰 조사를 위해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CCTV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어 일반에는 공개를 안하고 대신 증거물로만 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