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아침까지도 '007작전' 입다문 삼성그룹

머니투데이

임동욱 장시복 유엄식 기자

삼성 서초사옥 /사진=머니투데이DB

'결전의 날' 아침까지도 삼성그룹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17일 감정가 3조 3000여억원의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입찰 마감을 코앞에 두고도 삼성의 최고 수뇌부들은 돌다리를 두드리듯 신중하게 심사숙고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6시30분 쯤 삼성 사장단회의 참석을 위해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던 그룹 고위 임원들은 일제히 함구했다.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사장)은 한전 입찰 참여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허허허" 웃기만 했고,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도 "잘 모르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장충기 미래전략실 실차장(사장)도 "제가 알리가 있나"라며 에둘러 피했다.

감정평가액 3조3346억원의 초대형 매머드급 매물을 사들일 여력이 있는 후보군으로 재계 1~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입찰 의사를 표명하는 현대차그룹과 달리 삼성그룹은 마감 당일까지도 마치 '007 작전'을 펼치듯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매각공고 당시 "내용을 검토한 뒤 참여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힌 이후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그렇다보니 외부에선 여러 설(說)만 난무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입찰 마감이)오늘 오후 4시까지니 내부 방침이 세워졌더라도 실무진 쪽에서 검토 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입찰 참여는 하는 쪽으로 가닥은 잡혔지만 세밀하게 재무적 검토 등을 거쳐 적정 가격을 써 낼 것이라는 뜻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삼성은 왜 이렇게까지 신중한 모습일까.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원래 인수전이나 입찰에 앞서 결정 직전까지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물밑 작업을 하다 확정이 되면 거침없이 밀어 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괜히 경쟁자와 과열 양상을 보이다가 가격만 띄우는 무리수를 피하려는 전략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실리주의다.

또 워낙 명분을 중시하는 그룹 특성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른 때와 달리 그룹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건희 회장의 장기 입원이라는 변수까지 생겨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종합해 볼 때 이날 오전 미리 참여할 계열사의 이사회를 끝낸 뒤 오후 4시 입찰 마감 직전이나 직후에 공식 발표를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