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새 50% 덩치불린 국부펀드, '총성없는 전쟁'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글로벌금융 시장의 큰 손인 국부펀드들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냈던 국부펀드들이 최근 성장세를 회복하며 투자처 찾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이와관련, 최근 국부펀드의 급격한 팽창으로 자산가격 급등해 글로벌 경제가 교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한편 중동과 중국, 유럽 등지의 거대 국부펀드간 힘겨루기속에서 우리 국부펀드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료=SWF

◇ 석유자본에서 아시아 신흥국까지=국부펀드는 정부가 소유 또는 관리하는 공공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중동 석유자본이 시초다. 지난 1953년 쿠웨이트 투자청(KIA)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들의 국부펀드가 만들어졌다.
중동지역 국부펀드는 오일머니에 기반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시티그룹과 메릴린치, 바클레이, UBS 등의 지분을 대거매입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참여자로 급부상했다. 아시아 국가들 역시 제조업과 물류 등 전략산업 육성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국부펀드 확충이 유행처럼 번졌다. 싱가포르의 테마섹, 싱가포르투자공사(GIC)나 중국투자공사(CIC)와 중국 외환관리국(SAFE)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중국 CIC와 SAFE의 자금규모는 1조 달러가 넘는다.

최근 수년새 신규펀드 설립과 자본투입 확대, 자산시장의 강세 등에 힘입어 국부펀드의 자금규모는 급증하고있다. 미국 국부펀드연구소(SWF)가 집계한 순수 국부펀드 기관 자금은 지난 6월기준 6조 6090억달러(6900조원) 규모에 이른다. 2010년 4조 1190억달러에 비해 50%가량 늘어난 수치다.
최근엔 미국국채 등 선진국의 안전자산투자에서 신흥국 투자로 눈을 돌린데다 부동산 매입과 기업 인수합병(M&A), 인프라 프로젝트 등 투자대상도 다변화하는 추세다. 실제 올상반기 국부펀드의 직접투자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최고치에 근접했다. SWF에 따르면, 올상반기 기준 국부펀드들의 신규투자액은 500억 20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23%나 늘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상반기의 510억 5000만달러에 버금가는 규모다.

특히 최근 저금리기조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등 대체투자 분야 경쟁이 뜨겁다. 가령 893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노르웨이 GPFG는 채권과 주식에만 주로 투자해오다 저금리로 투자매력이 떨어지자 2011년부터 유럽과 미국등지의 상업용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올 상반기 기준 GPFG의 투자 포트폴리오중 부동산 비중은 1.2%였는데 이를 5%까지 늘리기로 했으며 특히 향후 3년간은 매년 100억달러 규모를 투자하고 아시아부동산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규모 1240조원의 세계최대 연기금 일본 GPIF도 최근 노령화로 운용자산 규모가 축소되자 그동안 견지해왔던 보수적 투자전략에서 탈피해 부동산투자신탁과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 글로벌 국부전쟁에 대응위해 역량·규모 키워야=문제는 이같은 국부펀드들의 매물찾기 경쟁으로 주요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투자매력이 높은 투자처 발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 연기금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연기금, 국부펀드들이 투자처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면서 "최근 5~10조원 규모 PEF에 투자하고 싶어도 현지 연기금들이 견제하는 상황이어서 운용사들의 반응이 예전같지않다"고 말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KIC 운용규모는 6000억 달러 규모인 중국 CIC의 8분의 1에 불과한데 우리경제 규모에 걸맞게 교섭력을 키우고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서라도 덩치를 키워야한다"고 말했다.

전문성에대한 지적도 있다. 한 금융투자사 고위관계자는 "일단 해외투자나 대체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산배분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하는데 우리 연기금, 국부펀드의 투자 전문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면서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되는 전근대적 지배구조도 문제인데 심지어 좋은 매물을 물어다줘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산되는 사례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국부펀드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가령 국부펀드와 연기금은 선진 운용 노하우를 국내 금융기관으로 전파해 국내 금융시장을 발전시키는 첨병 역할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사 한 고위 관계자는 "싱가포르의 경우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테마섹과 GIC가 금융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해 동남아 국가중 유일하게 위기를 빗겨갈 수 있었고 이후 세계 금융허브로 도약하는데 국부펀드가 중대한 역할을 했다"면서 "우리 국부펀드와 연기금들이 조금이라도 이같은 역할을 했는지 반문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