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韓증시 이탈하는 外人은 헤지펀드

한국 증시에서 이탈하는 외국인 자금의 성격이 글로벌 헤지펀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자금이 움직이는 속도와 시점 등을 종합하면 확률이 높아 보인다.

헤지펀드는 장기투자보다 단기 이벤트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큰데 한번 방향을 잡으면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당분간 증시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외국인, 최근 4일간 8352억 순매도

23일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총 2445억원의 주식을 처분, 최근 4일 거래일간 8352억원을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공격적인 매도세에 비해 기관투자자들의 대응은 적극적이지 못했다.

결국 매수주체 실종으로 시장이 속절없이 밀리는 국면이 연출됐다. 코스피지수는 외국인 매도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이달 17일 2062.61(종가기준)에서 이날 2028.91로 4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한국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 자금은 국적 뿐 아니라 투자성향도 제각각이다. 일단 국가별로는 미국의 비중이 가장 크고 영국,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사우디, 아일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캐나다, 중국 등의 순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한 뒤 "구체적인 자료는 없지만 최근 증시에서 매도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미국과 영국계로 보고 있다"며 "여기에는 글로벌 헤지펀드 비중이 많고, 최근처럼 급격한 자금의 유출입도 이들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계 자금은 국부펀드 등 공적자금이 많아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만큼 한국에서 이탈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엿다.

증권가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헤지펀드가 매도주체일 가능성은 높지만, 조세 회피지역을 근거로 하는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병규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계 자금은 S&P500지수가 상승할 때 유입되는 성향이 있다"며 "역대최고치인 S&P500의 추이와 올 1~8월 미국계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됐다는 점을 보면 매도로 전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증시로 자금이 크게 유입된 영국을 포함한 유럽계 자금도 가능성이 낮다며 결국 룩셈부르크와 케이만아일랜드, 버진아일랜드, 버뮤다, 라부안 등 조세회피지역의 자금이 급격히 이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이들의 성격인데, 이에 대해 민 애널리스트는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한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역시 헤지펀드라는 얘기다.

◇미국 양적완화 종료, 기업실적 부진, 달러강세…

시장의 관측대로 헤지펀드를 주체로 볼 경우, 현재 한국증시는 '매도 포지션'에 무척 우호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일단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표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하고, 다음으로 비중이 큰 현대차그룹도 '10조입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헤지펀드 수익률을 좌우한다는 환율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각국 통화정책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원화 약세) 헤지펀드 입장에선 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한 수익률이 떨어진다. 환율이 오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주식을 처분하는 게 유리한 셈이다.

원/달러 환율(서울외환시장)은 8월 말 1014.00원에서 이날 현재 1040.00원으로 크게 오른 상태다.

각국 움직임을 보면 달러강세에 우호적인 여건이 마련돼 있는 터다. 미국은 지난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예정대로 10월 양적완화(QE)를 종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대로 유럽과 한국은 유동성 확대와 금리인하를 추가로 단행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유럽-한국 모두 강한 달러에 우호적인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정부는 경기둔화를 용인하는 스탠스다.

헤지펀드 입장에선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달 12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으나, 향후 금리의 추가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 부총리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주요국 대비 여전히 높고, 정책 여력이 충분하다고 언급했다.

동양증권의 민 연구원은 "금리인하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지난 주 후반 원/달러환
율은 4월 이후 최고치, 3년 국채 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연일 경신했다"며 "이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국인 매매 집중되는 종목은

시장의 관측처럼 외국인 매도자금은 헤지펀드일 가능성이 높지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외국인들의 매도가 줄을 잇는 종목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자금흐름이 추세를 형성한 만큼, 당분간 관련 기업들의 주가에는 큰 부담이 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들이 4일 연속 순매도한 종목은 현대차를 비롯해 네이버, SK텔레콤, SK하이닉스, KT&G, 아모레퍼시픽, 고려아연 SK C&C, 현대위아, LG유플러스 등이었다. 특히 현대차와 네이버는 순매도 금액이 1000억원을 훌쩍 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국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 배당주와 가치주라는 점이다. 투자 트렌드의 변화, 혹은 셀 코리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4일연속 순매수 종목은 삼성물산, LG화학, 금호타이어, GS건설, 동부화재, CJ CGV, SKC 등으로 집계됐다. 대형주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중소형주 가운데 경기 방어주와 가격 메리트가 거론되는 종목에 집중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