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자와 가치투자는 왜 실패하는가

몇 년 전 증권사 신입사원 면접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5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본인이 투자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겠습니까?” 그들은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이 ‘버핏과 같은 가치투자’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최근엔 저PER(주가수익비율)주에서 종목을 선택하는 가치투자가 큰 재미를 못보고 있다. 오히려 화장품, 의류 등 추세가 살아있는 일부 고PER주를 사는 것이 저PER주를 사고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수익률이 좋다.


또 다른 사례이다. 2007년 중국과 한국에 펀드 광풍이 불었을 때, 지인이 펀드에 가입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장기투자자라는 것이었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단기가 아닌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2007년에 가입한 펀드를 무려 7년이나 장기 투자 중이지만, 아직도 수익률은 크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왜 장기투자와 가치투자는 실패한 것일까? 장기투자는 투자수수료나 세금 면에서 단기투자보다 효과적이다. 하지만 장기투자는 ‘장기(長期)’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사실 투자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자시기가 중요하다. 아무 때나 무턱대고 매수한 후 장기간 보유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싼 가격이라고 판단되는 시기에 매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서 상승장 초기엔 어울리는 투자법이지만, 지금과 같은 박스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7년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니 이제는 장기투자자가 빛을 발할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2000년 IT버블 붕괴 이후 무려 약 13년 동안이나 박스권에 머물렀으며, 한국도 1989년 코스피(KOSPI)가 1000을 찍은 이후 15년 동안 지수가 횡보했던 경험이 있다.

가치투자 역시 상승장이냐 박스권이냐가 중요하다. 상승장에서는 기업실적(EPS)이 호전되고, 동시에 시장 전체의 밸류에이션이 상승한다. 반면 횡보장은 기업실적(EPS)이 상승한다 하더라도 밸류에이션이 하락하기 때문에 주가는 박스권에 머물게 된다. 이런 횡보장에서는 의미 있는 실적 성장을 보이는 저평가 가치주가 존재하기 힘들뿐더러, 찾았다고 해도 시장 전반에 밸류에이션(PBR)이 하락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지금 KOSPI는 횡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치투자/장기투자보다는, 박스 하단에서 매수하여 상단에서 매도하는 단기 역발상 전략이나 일부 실적이 견조한 종목 또는 배당 매력이 있는 주식들을 압축하여 보유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전략이다. 결국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상승장이 시작될지, 아니면 횡보장이 지속될지를 판단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