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망한다?

/그림=김현정 디자이너

# “창업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면 안 됩니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걸 해야 망하지 않습니다” (남민우 다산넥트웍스 회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공한 창업가를 자신의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로 대박을 이룬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나 알리바바의 잭 마 회장 같은 경우다.

창업가들을 만나서 왜 창업했냐고 물으면 대기업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많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 보단 창업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보람도 얻고 성공도 할 수 있다는 장밋빛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성공한 벤처1세대인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최근 한 창업특강에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열심히 목숨 걸고 하다 보면 좋아진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돈을 까먹었다”며 후배 청년 창업가들에게 자신의 꿈과 창업의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사업은 항상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제품이나 서비스)을 개발해야 한다”며 시장을 모른 채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했을 땐 돈을 벌지 못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실제로 남 회장은 지금까지 10개 기업을 창업했지만 절반은 실패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 “시장의 니즈(needs) 유무에 따라 창업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안창준 전 소프트포럼 대표)

1세대 보안솔루션 업체의 대표 주자였던 소프트포럼의 창업자인 안창준 전 대표는 1990년대 후반 혁신적인 인터넷 뱅킹 솔루션을 개발, 창업에 나섰지만 시장에서 팔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 전 대표가 창업 초기 실패 경험에서 배운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전에 철저히 ‘시장의 요구를 읽어라’는 것이다. 밤잠을 설치며 심혈을 기울여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봤자 시장의 요구와 거리가 먼 것이라면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개발했는데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창업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경우 새로운 사업 아이디오로 재빨리 방향 전환(pivoting)을 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실패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기는 더욱 어렵다.

안 전 대표는 “시장 수요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창업을 미루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며 “단지 열심히 하는 것만이 창업의 미덕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 “올해 실패한 스타트업 10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타트업 실패 이유 1위는 시장이 원하지 않는 제품·서비스를 생산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CB insights 보고서)

미국 벤처캐피털 전문 조사 기관인 CB insights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창업자 자신이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이유로 자금부족을 1순위로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시장에서 팔릴 것을 만든 게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었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스타트업 실패 이유 20가지를 살펴보면, 소비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질적으로 나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 경우와, 소비자가 원하는 적정가격과 달리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높은 실패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실패한 많은 창업가의 공통점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후 뒤늦게 시장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결국 사업은 정상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채 현금이 고갈돼 망하기 십상이다.

스타트업의 실패요인을 분석해 보면 결국 ‘시장’으로 수렴됨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스타트업의 성공 열쇠도 결국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는 창업으로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