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전략]박스권 하단 뚫리나

지루한 '박스피'를 벗어나 고점을 향해갈 듯 보였던 코스피 시장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오히려 박스권 하단을 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17일 코스피지수는 8개월여 만에 장중 1900을 밑돌 정도로 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일대비 18.17포인트(0.95%) 하락한 1900.66으로 마감했다. 1900선에 턱걸이하긴 했지만 이는 종가 기준 지난 2월6일 1907.89 이후 최저치다.

지난달부터 기록적인 약세가 이어지며 연간 저점을 경신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코스피지수 연간 저점은 지난 2월 4일 기록한 1886.85다. 연간 저점까지 이날 종가 기준으로는 약 14포인트, 이날 장중 저가 기준(1896.54)으로는 약 10포인트 남았다. 지난해 종가기준 저점은 6월25일 기록한 1780.63이다.

특히 최근 코스피지수의 움직임을 볼 때 전형적인 약세장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빠질 땐 급격히 하락하고 오를 땐 살짝 반등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서만 두 번 1% 이상 급락했다. 지난 1일 28.55포인트(1.41%), 10일 24.33포인트(1.24%) 하락한 것. 반면 이달 반등은 단 이틀 있었는데 7일 4.52포인트(0.23%), 14일 2.04포인트(0.11%) 오르는 데 그쳤다.

박형중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급격히 빠지다가 살짝 오르는 이런 흐름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약세장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코스피시장은 이미 약세장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고 흐름을 반전시킬 만한 계기가 없기 때문에 추가 하락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시 급락은 비단 코스피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양적완화 종료를 앞둔데다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이달 들어 세계 증시는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서만 5.91% 하락했고, 같은 기간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5.43%), S&P500지수(5.43%), 유로스탁스50지수(10.88%), 중국상하이종합지수(0.31%), 일본니케이225지수(10.14%) 모두 하락했다.

최근 코스피시장의 급격한 약세는 미국 양적완화 종료 및 조기 금리인상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 유럽을 비롯한 세계 경기 침체 우려, 국내 주요 기업의 실적 부진, 정책 효과 부재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노출된 재료지만 단기간에 해소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럽을 비롯한 세계 경기 침체가 현재 우리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16일(현지시간) 제임스 불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현재 진행중인 양적완화 종료 시점을 늦추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발언했는데 그만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방증이다.

나중혁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금 세계 증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프랑스가 이달 15일 EU에 제출한 예산안의 통과 여부"라며 "심각한 경기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는 경기 부양을 위해 당초 약속과 달리 2016년에 재정적자 비율 3%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예산안을 냈는데 이달 말 EU 집행위가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나 팀장은 "특히 유로존을 이끌고 있는 독일에서 EU의 경기부양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예산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유로존의 경기부양 정책이 지연되고 프랑스 정부가 돈을 풀지 못하게 되면 유럽 경기 회복 시점은 더 늦춰질 수 있고 국내를 비롯한 세계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코스피지수의 추가 하락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리 증시가 급격한 조정을 거치면서 이미 바닥권에 근접했기 때문이라는 것. 현 시점에서 코스피시장 전체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가 1870 수준이고, 지난 8월 4일 2080.42까지 올랐던 걸 감안하면 이미 10% 가까이 빠졌다는 게 바닥론의 배경이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경기 침체 우려가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이나 리세션이 시작됐다고 볼 상황은 아니다"라며 "IMF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긴 했지만 올해보다는 높게 보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우리 증시가 다음주에는 바닥을 확인하고 점차 안정을 찾는 과정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