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처럼 시작해 인디밴드로 끝난 서태지 무대 '베스트 3·워스트 3'

서태지는 18일 5년 만의 컴백 공연에서 최첨단 사운드와 무대 장치로 시선을 압도했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18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을 찾았을 때, 가장 크게 든 의문은 ‘서태지는 왜 5만석 무대를 고집했을까’였다. 공연 게스트로 참가한 힙하퍼 스윙스의 멘트를 빌리지 않더라도, 관객은 어림잡아 1만5000명 안팎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5년 만에 복귀한 서태지 인기를 객석 점유율에 반영하지 못한 ‘예상밖의 실패’는 어머어머한 무대 규모를 본의 아니게 초라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서태지 무대는 대부분 수만석 규모의 체육시설에서 진행됐고, 관객은 지금까지 빈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인기는 이제 ‘1만석 정도’의 뮤지션급으로 떨어진 것일까.

이를 반영하듯, 서태지는 신곡 ‘나인티스 아이콘’에서 “한물간 별 볼일 없는 가수가 들려드린다”는 자조 섞인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물론, 이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날 ‘크리스말로 윈’이란 제목으로 열린 서태지 컴백공연은 외형적으로는 ‘조용필급’의 관록과 첨단의 무대를, 내용적으로는 마니아 위주의 인디 밴드 무대를 보는 것처럼 극과 극의 장면들이 한꺼번에 수놓였다. 오랜만의 복귀 부대에서 발견한 ‘베스트 3’와 ‘워스트 3’ 장면을 골랐다.

서태지는 발라드 곡 '너에게'에서 추억의 정서와 진정성있는 가창으로 새로운 '발라더'로서의 진면목을 선보였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 ‘베스트3’ 장면


① 극강의 사운드=잠실주경기장은 뮤지션 입장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리에 예민하고, 늘 완벽한 사운드를 꿈꾸던 서태지는 최고의 사운드를 작은 공간이 아닌 큰 공간에서 마음껏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그는 세계적인 음향 엔지니어 폴 바우만이 디자인한 음향들을 배치해 수준높은 사운드를 들려줬다. 총 130대 메인 스피커와 36대 서브 우퍼가 울려대는 사운드는 혹시 번질지도 모를 하울링(howling·시끄러운 잡음)까지 모조리 차단했다.

특히 약한 보컬을 감추기위해 보컬 밸런스를 각 악기와 차별화하지 않고, 균등하게 나눔으로써 ‘보컬의 약점’까지 드러내는 과감함도 시도했다. 이 사운드를 듣는 내내 서태지가 이 공연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려고 했는지 그 과정과 노력이 읽혔다.

5만 관객 앞에서 완벽한 사운드를 보여주며 ‘최강 사운드의 미학’을 보여준 조용필처럼, 서태지도 야외 공연장의 사운드 노하우를 읽고 실현함으로써 앞으로의 무대 사운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② ‘밴드감’의 정점=광팬들의 눈에는 서태지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영역이지만, 무대 전체를 놓고 보면, 서태지보다 서태지를 받치는 악기 연주자들의 밴드감이 절정에 달했다. 단 하나의 박자도 놓치지 않는 ‘합(合)의 미학’이 연주자들 사이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드럼의 박자, 베이스의 날카로운 리듬감, 기타의 표현력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중 키보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독스 킴(Docs Kim)의 활약은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센스와 기지가 넘치는 이 연주자의 연주로, 곡들은 좀 더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는 형태로 전개됐다. 기타리스트가 전처럼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신공’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자제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③ ‘발라더’ 서태지=멘트도 그대로, 퍼포먼스도 그대로. 달라진 것 없는 그의 무대에 ‘색다른 발견’의 한 장면이 있었으니, 발라드 노래를 전보다 훨씬 더 잘 부른다는 것이었다. 다만 옛날 곡에 한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아이유와 함께 부른 ‘소격동’에서 보여준 발라드 창법은 별 특색도 감흥도 느끼지 못했으나, ‘너에게’에서 보여준 발라드 가창은 뭔지 모를 짜릿함과 아련함을 안겨줬다.

성시경의 예쁘고 안정적인 리메이크 버전을 기억하고 있는 신세대들에게도 서태지가 부르는 이 노래는 ‘테크닉’이 아닌 ‘진정성’의 가창, 알지 못하는 추억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한 분위기의 가창을 안고 관객을 흥분시켰다. ‘널 지우려 해’에서도 그는 예전보다 더 많은 감성을 담아 ‘발라드 가수’의 새로운 진면목을 선사했다.

18일 컴백공연에서 서태지는 좋은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그루브'(리듬감) 약한 편곡과 선곡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모은데 힘이 떨어졌다. 서태지는 이날 공연에서 신곡 '소격동'을 아이유와 함께 불렀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 ‘워스트 3’ 장면

① ‘그루브’의 상실=이날 펼쳐진 19곡 모두 ‘달리는’ 형식으로 전개됐다. 서태지 말처럼 록과 댄스, 힙합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장르를 오랫동안 선보여왔음에도, 무대 곡들은 요즘의 언어와 문법이 아닌, 강렬한 스트레이트로 달렸을 뿐이다.

록을 베이스로, 힙합과 댄스가 가진 ‘끈적한 그루브(groove·리듬감)’를 현대적으로 요리해서 대중의 입맛을 충족시킬 법한데도, 서태지는 여전히 직선의 선율과 리듬만 고집했다. 그렇다고 메탈리카식으로 헤비메탈로 일관해 관객의 헤드뱅잉을 유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룬5식의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정도의 그루브는 아니라 할지라도, 옛날 곡의 현대적 편곡으로 좀 더 맛깔난 식단을 차리지 못한 것은 옥에 티였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완전히 뛰지도, 그렇다고 장단에 맞춰 춤추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2시간여를 견뎌야했다.

신곡 ‘크리스말로 윈’의 전주가 나름 댄스감을 앞세운 그루브를 강조했지만, 곡 전체로 보면 알싸한 리듬감을 느끼기 어려운 무대였고, 이 같은 흐름은 신곡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② 범대중성 약화=사운드, 연주, 화려한 스크린, 압도적인 스케일 등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이 무대는 그러나 관객의 집중력을 얻는 데는 힘이 떨어졌다.

우선, 신곡에 대한 생경함(독특한 음악이어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한국적 정서가 도드라진 선율과 따라하기 쉬운 반복 후렴구의 부재), 대중을 위한 선곡의 미배려(‘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은 30% 정도 소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록의 경쟁력이 떨어진 시대, 서태지 명성만을 앞세워 ‘우리끼리의 음악’을 즐기자는 모토는 자칫 마니아 위주의 인디 밴드 같은 모양새로 흘러가기 십상이었다.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관객과 함께 동화되는 보편적 선곡, 튀는 편곡의 부재가 아쉬운 대목이었다.

③ ‘하여가’ 이상한 편곡=공연의 마지막곡으로 불려진 ‘하여가’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상한 편곡’의 정점이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그루브 넘치는 곡을, 서태지 표현대로 ‘졸빡’(졸라 빡세다)으로 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서태지는 바스코, 스윙스 등 힙하퍼들과 미친 듯이 달리며 목을 썼지만, 관객 중 이 노래를 제대로 따라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이 공연에서 선보인 ‘컴 백 홈’은 강렬한 록의 편곡에 신선한 호평을 받을 정도로 무난했지만, ‘하여가’는 되레 이상한 편곡으로 팬의 외면을 받을 만했다.

도대체 어디서 마디가 끊어지고, 어떤 박자로 맞춰 들어가야하는지, 알쏭달쏭한 리듬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렸다. 차라리 ‘교실이데아’처럼 원곡 그대로 들려줬으면 ‘졸빡’하지 않고, 함께 공감하는 최고의 곡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