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전쟁 벌어지는데, 우리는 국회서 낮잠

# 예비창업자인 A씨는 수년째 구상해온 모바일서비스 창업 자금조달을 위해 국내 엔젤투자자들을 찾아나섰지만 실패했다. 결국 그는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업체를 통해 자금조달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는 "국내 엔젤투자가나 벤처캐피탈이 다수 있지만 예상외로 보수적이고 아이디어의 혁신성보다는 시장에서의 성공가능성 위주로 따지다보니 자금유치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같다"면서 "미국은 자금조달 문턱이 낮고 크라우드 펀딩서비스가 활성화되고있어 도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야심차게 시작한 크라우드펀딩 제도가 표류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이 우리보다 먼저 크라우드펀딩 제도를 도입했고, 보수적인 일본조차 지난 5월 관련법령을 통과시킨 상황이지만 우리는 법안이 국회문턱조차 넘지못해 자칫 전세계적인 크라우드펀딩 관련 창업기반 조성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금융당국과 관련업계에따르면, 지난해 6월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이 크라우드펀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9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법안은 1년 4개월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지난해 법안처리를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 관련 제도와 법안을 마련했지만 국회가 공전하면서 1년이상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은 예비창업가가 온라인 펀딩업체를 통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기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조달이 어려운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새로운 자금줄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도 제도화를 추진했거나 추진중이다.
미국의 경우 2012년 오바마 행정부가 소규모 기업창업자금 조달을 위한 '스타트업육성지원법'(JOBS ACT)을 제정했다. 이를통해 증권신고서 제출면제 대상에 크라우드 펀딩을 추가했다. 이탈리아도 같은해 '창업을위한 혁신과 성장촉진법안'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합법화했다. 영국도 금융규제청(FCA)이 2013년부터 크라우드펀딩을 육성계획을 내놓고 지난해 2월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중개업체를 최초로 인가했다. 일본역시 지난 5월 금융상품거래법을 제정하면서 크라우드펀딩 제도를 포함시켰다.

반면 우리는 제도화가 발이 묶인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는 30여곳의 크라우드펀딩업체가 활동중이지만 대부분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형이나 완성품으로 보상받는 후원형 또는 기부형으로, 지분투자형은 두 곳뿐이다. 관련법 개정으로 지분투자형 비중이 늘고있는 미국, 유럽 등과 다른 점이다.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오픈트레이드의 고용기 대표는 "증권 발행과 공시가 필요한 공모형태의 지분참여형 크라우드 플랫폼은 현행 자본시장법의 규제에 발이묶여 업계가 대부분 후원형이나 보상형, 대출형에 집중하고 지분투자형도 일부 엔젤투자자들을 온라인상에서 연결해주는 반쪽짜리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는 JOBS법 시행령이 나오기 전이지만 이미 기관투자자의 클라우드펀딩 참여가 허용돼 일부 연금펀드 운용사들이 다수의 크라우드펀딩 업계에 자금을 맡겨 스타트업에 분산투자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미 2009년부터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플랫폼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스마트워치인 페블이나 가상현실기기 오큘리스 프로젝트가 현실화된 상황이어서 개인형 크라우드펀딩의 폭발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법제도가 미비해 심지어 일부 예비창업자들이 해외 크라우드펀딩 업체를 기웃대다 실패해 국내로 U턴하는 사례까지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크라우드 창업 경쟁에서 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이철 대표는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탈 자금이 1이면 크라우드기반 엔젤투자는 100에 해당할 정도로 규모가 큰데 반해 우리는 반대로 벤처가 100이고 엔젤은 1인 상황"이라며 "중국도 지난 5월까지 크라우드펀딩으로 33조 5000억원이 모이자 당국이 이에 자극받아 연말까지 법과 시행령을 만들기로 했는데 우리는 관련법안이 낮잠만 자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스타트업과 창업 자금조달시 여전히 복잡한 절차와 인가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각종 벤처, 스타트업 육성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간의 자금흐름을 활성화하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한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크라우드펀딩은 은행이나 기관투자가 중심 창업자금 조달채널을 일반투자자로 옮기는 것으로 그야말로 새로운 창업생태계의 문을 여는 셈"이라면서 "전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지난해에만 69억달러에 매년 수백%씩 성장할 전망인데 미국이나 유럽은 그렇다쳐도 보수적인 일본이나 심지어 중국에 조차 제도화가 뒤진다면은 우리 창업환경은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