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시라크, '살신 개헌'으로 미래를 열다

1987년 개헌이후 한국 사회에서 개헌은 뜨거운 감자다. 개헌에 대한 요구는 지속됐으나 정치권은 난마처럼 얽힌 이해관계를 벗어나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모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해에 벗어나는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일까. 미국과 프랑스의 개헌사에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교훈이 될 사건들이 있었다.


◇ 트루먼, 3선 금지를 수용해 미국 민주주의 전통을 지키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미국에서는 헌법 개정을 위한 논의가 있었다. 후에 수정헌법 22조로 불리우는 대통령의 3선이상을 제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이전까지 미국에는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장기집권을 위한 정쟁을 우려해 재선이후 대통령직을 맡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 '삼선 금지'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이 2차 대전의 혼란 속에서 루스벨트가 1940년 3선, 1944년 4선에 연이어 당선되면서 깨진 것이다.

당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이었다. 한국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트루먼은 대외적 위기 속에서도 3선 제한의 수정헌법22조 통과를 받아들였다. 루스벨트의 4선을 경험한 미국사회는 선례를 막고자 개헌을 추진했고 트루먼은 이에 동의했던 것이다.


트루먼은 본인이 부통령에서 루스벨트 사후 임기를 채우고 대통령이 당선됐었기에 다시 선거에 나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3선 제한을 받아들였고 미국은 건국 초기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킬 수 있게 됐다.

◇ 시라크, 대통령 임기 7→5년으로 줄여 불안한 정국 해소 토대 만들어
2000년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기존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1873년 제3공화국 출범시 확정된 이후 100년 넘게 지속돼 왔다. 중임 역시 특별한 규정이 없어 재선되면 무려 14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스에서 대통령임기를 줄이는 논의는 20세기 후반에 여러 번 제기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당선이후 공약사항이었던 개헌을 추진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임기제한을 주장한 사람은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1981년 사회당 대선후보 당시 5년중임제 또는 7년 단임을 주장했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개헌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후 시라크는 대통령 중임에 성공해 14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후 개헌논의는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가 2000년 데스탱 전 대통령이 5년 임기제 법안을 제출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이에 당시 의회의 수장이었던 사회당 죠스팽 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이 안에 찬성했다.

1995년 당선된 시라크 대통령 역시 개헌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국민과 의회의 개헌 요구에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축소하는 제한적 개헌이라면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