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 주식펀드 산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외국인의 매도공세에 국내증시가 1900선을 겨우 지지하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달 6225억원을 판 데 이어 이달들어서는 2조4000억원 어치 주식을 팔아치우며 매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역외 한국주식펀드, 7월부터 자금유입 지속=최근 한국증시의 외국인 매도는 이머징마켓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자금 순유출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머징마켓 전체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여기에 포함돼 있는 한국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한 주 동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주식형 펀드에서 8억2600만달러(8673억원)가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 달 동안 빠져나간 자금이 총 2억9400만달러(3087억원)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들어 유출강도가 더 거세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머징마켓 전체에 대한 자금 유출에도 한국증시에 단독으로 투자하는 역외펀드로는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이는 외국인들이 개별국가로서 한국에 대해 여전히 투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으로 한국증시에 투자하는 역외펀드 48개로는 7월에 631억원, 8월에 4061억원이 유입된데 이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9월과 10월에도 각각 3055억원, 2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이들 펀드에서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4205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바 있다.

펀드별로는 블랙록이 운용하는 iShares MSCI South Korea Capped ETF로 7월 821억원, 8월 2740억원, 9월 2560억원이 들어온데 이어 이달들어서도 자금이 183억원 늘었다. 이 ETF는 순자산이 4조7523억원 규모로 한국주식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와 JP모간이 운용하는 Invesco Korean Equity A Inc와 JPMorgan Korea Equity A (acc)-EUR도 이달 각각 30억~40억원 순자산액이 커졌다.

지난달 유럽계 자금이 한국 주식을 매도한 반면 미국과 일본계 자금은 한국주식을 지속적으로 사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지난달 영국과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계 자금은 한국주식을 1조6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했지만 일본은 9360억원, 미국은 7902억원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계 자금은 최대 공적연금인 캘퍼스를 비롯한 장기투자 자금이 많고 일본의 경우에도 최근 해외주식 비중을 높이고 있는 공적연금(GPIF) 자금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기매수 자금은 여전히 한국시장을 선호하고 있고 최근 매도물량은 단기투자 자금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즉 시장 안정화 신호가 있다면 외국인이 매수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온수 현대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경기둔화, 미국 양적완화 종료와 금리인상 우려로 안전자산에 자금이 쏠리다 보니 신흥시장 전반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며 "1, 2차 양적완화 종료 당시에도 시장 혼란이 있었지만 침체로 이어진것은 아니고 이후 정책당국자의 대응책이 발표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수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로 3조유입=외국인이 국내주식을 내다파는 동안 투신권은 국내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투신권은 지난달 5928억원을 샀고 이달에도 8000억원 가까이 국내 주식을 매수했다. 최근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형 펀드를 매수하면서 자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일 기준으로 최근 한 달간 국내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3조967억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펀드자금 유입이 주식시장 하방을 지지해주는 역할을 할 뿐 시장을 들어올릴만한 모멘텀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펀드자금 대부분이 성장주 펀드보다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레버리지 펀드와 안정을 추구하는 배당주 펀드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달동안 레버리지 펀드로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유입자금 60%에 해당되는 1조8531억원이 들어왔다. 배당주 펀드로는 5829억원이 순유입됐다.

오 연구원은 "과거 지수 급락시에는 인덱스펀드나 성장주 펀드로 자금이 유입됐지만 저금리, 친배당정책 기대감 등으로 배당주 펀드로 자금이 쏠리고 있다"며 "배당주가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지수상승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한 달 간 투신권이 많이 사들인 종목 10종목 중에서는 SK텔레콤, KT&G, 한국전력, 아모레G우선주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