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에게 기업가정신 교육 시켰더니

지난 7월31일부터 2박3일 간 한양대에서 진행된 '2014학년도 ITRC·ICT융합센터 기업가정신 교육' 현장 모습/사진=벤처1세대 멘토링센터 제공

최근 중소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이공계 석‧박사들 가운데 창업을 결심하는 이는 고작 0.2%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공계 석‧박사들은 대개 정부 출연 혹은 대기업 연구소 등으로 진로를 정하고 또 상당수는 졸업한 뒤 의‧치학 전문대학원으로 전공을 바꾸길 희망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 방안과 대학창업교육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창업마인드를 고취하고 도전정신 및 기술사업화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벤처1세대 멘토링센터)과 손잡고 지난 5월부터 전국 대학 산하 ITRC·ICT융합센터 소속 37개 대학 석‧박사과정 공대생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동안 총 850여명의 석‧박사과정 공대생들이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았다.

이같은 공대생들에 대한 기업가정신 교육은 단기간에 불구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건국대와 성균관대 2곳에선 공대생들이 실제로 창업에 나섰고 항공대, 경희대, 카이스트(KAIST) 등 5곳 공대생들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다음달까지는 창업에 뛰어드는 공대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건국대 컴퓨터공학 석사과정 중인 정혁준씨(26)는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고 1주일 만에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창업에 나섰다. 그는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창업을 꿈꿔왔지만 정보가 없어 막막하던 상황이었다. 정씨는 "실무 중심의 수업내용 뿐만 아니라 실제 창업 경험이 있는 멘토를 만나 사소했던 궁금증까지 모두 해소할 수 있었다"며 "창업에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소재공학 석·박사통합과정 6년차인 조덕수씨(28)는 지난 8월 기업가정신 교육을 이수한 뒤 본격적인 창업 준비를 위해 벤처1세대멘토링센터 3기 멘티 모집에 신청해 정식으로 선정됐다.

조 씨는 "원래 특허 등록을 목표로 연구 중이던 핵심기술이 있었는데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우수팀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기업가정신 교육 프로그램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점과 꾸준히 멘토링 받은 점이 인정돼 지난 21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날 'ITRC 기업가정신 교육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상과 함께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21일 '2014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의 일환으로 진행된 'ITRC·ICT 융합센터 기업가정신교육 지상간담회'에서 경희대 허의남 교수는 "공대생들의 비즈니스 이해도나 기업가적 마인드를 한층 높이는 정성적인 효과도 컸다"며 공대생들 사이에 기업가정신의 저변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ITRC·ICT융합센터 기업가정신 교육을 높이 평가했다.

포스텍(POSTECH)의 손영우 교수도 "이 프로그램 이후 창업 관련 강의를 2~3번 반복해서 듣는 공대생들도 생겼다"며 공대생들에게 창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 교육이 짧은 기간에도 불구 공대 출신 예비창업자를 이끌어 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론 위주의 강의를 배제하고 철저히 실무 위주의 창업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는 데 있다. 교육을 담당한 벤처1세대 멘토링센터의 CEO멘토들은 창업부터 운영, 엑시트(자금회수)까지 모두 경험한 벤처1세대 창업가 출신이다.

교육 내용은 2박3일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개발 결과물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타당성 검토, 경쟁사 분석, 마케팅 전략 등을 모두 작성해 하나의 사업계획서를 완성시키는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CEO멘토와 대화하며 생생한 창업 이야기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처음 기업가정신 교육이 이뤄진 탓에 몇 가지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교육에 참가한 일부 공대생들은 "2박3일 안에 큰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해서 벼락치기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공학적 지식과 사업 경험을 모두 갖춘 전문 강사가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허 교수는 "학생들이 '나도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반면 실패 위험 때문에 (창업 도전을) 망설이더라"며 "실패에 대한 제도적 보완과 누구나 지식만 있으면 창업에 나서는 문화조성을 통해 재태크가 아닌 '지(知)테크' 사회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2박3일의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은 공대생들이 모두 창업에 나서는 건 아니지만 원하는 학생은 심화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1회성 교육에 그쳐서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벤처1세대멘토링센터의 임연호 CEO멘토는 "제한된 시간내에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다 보니 공대생들의 기존 연구와 상관없는 여행이나 인터넷 등의 쉬운 사업 아이템에 집중되는 경향이 높았다"며 "결과물을 평가했을 때 질적인 측면에서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표=김다나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