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 급증 "해외부실 털더라도 투자할 땐 해야"

바다에서 본 한국전력 세부발전소 전경/사진=한국전력

한국전력은 필리핀 내 사업장 중 소규모에 속하는 세부 발전소에서만 하루 1억5000만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다. 비결은 국내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싼 전기료다. 대규모 차관투자를 단행한 일리한 발전소가 단시간 내 빚을 모두 상환하고, 세부발전소가 매일 순익을 내는것도 다 이 덕분이다. 게다가 필리핀 내 가전제품 보급 확대 등으로 전력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전 세부발전소 관계자는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여지가 대단히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필리핀 전력수급 상황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필리핀 정부는 내년 전력수급을 놓고 '초긴장' 상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 차례 비상회의를 통해 전력수급 상황을 점검할 정도다. 일리한발전소 한 관계자는 "발전소 내부에서 비상사태에 사용하기 위해 예비발전기를 여러대 보유하고 있는데 필리핀 정부가 이 예비발전기를 돌렸을때 만들 수 있는 전력량까지 확인하더라"며 "정부에 말 그대로 비상이 걸린 상태"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는 또 NEA(국가전화청)을 통해 전국의 배전승압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필리핀 가정은 220볼트 전기를 쓰는데 반해 송전은 110볼트로 이뤄져 전력손실이 큰 상태다. 단계적으로 전국적으로 송전전압을 높인다는 것이 필리핀 정부의 복안이다. 한전은 사업협력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국내서 이미 전국적인 승압공사를 실시한 이력을 갖고 있어 일본 등 경쟁자들보다 유리하다. 만약 본격 수주가 진행된다면 필리핀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매출을 낼 수 있을지 예상도 어려울 정도로 사업규모가 크다. 수주를 위해 정부와 한전이 함께 뛰어야 할 시점이다.

한전 입장에서는 이 보다 좋은 투자기회가 없다. 게다가 말라야사업이 2011년 시한만료로 현재 청산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수익의 큰 축이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의사결정은 하지 못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해외 에너지개발이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발생한 부정적 여론이 한전의 해외사업까지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관계자들은 부실은 털더라도 투자를 집중할 땐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전 필리핀법인 한 관계자는 "한전의 필리핀 사업은 해외서 자원을 찾는 것과는 시스템이 다른 사업"이라며 "현지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속한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민도 이에 맞닿아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공기업의 해외 에너지투자를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그간 투자해놓은 마중물을 그냥 버리는 셈"이라며 "옥석을 골라 과감하게 역량을 집중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