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앓는 김우중, 서울대 강연 "잘못된 구조조정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 /사진=뉴스1 제공.

"한국이 금융위기에 빠진 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구조조정을 택한 게 가장 큰 비극이었다."

'김우중과의 대화'의 저자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22일 서울대 강연에서 1997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산업적으로 이뤄졌던 '기업해체'식 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했다.


서울대 경제연구소가 주최한 이날 강연은 '대우 흥망과 IMF 주도 개혁의 재조명'을 주제로 열렸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신장섭 교수가 참석했다.

신 교수는 강연에서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간 이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했다는 게 한국경제사의 정사(正史)로 돼 있다"며 "저는 이렇게 구조조정을 한 것과 대우그룹이 해체된 게 한국경제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이뤄진 구조조정 탓에 신흥시장 진출 기회가 막혔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모두가 외국으로 넘어갔다"며 "진취적 정신의 약화, 잘못된 세계화, 반기업 분위기 강화 등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국내 주요 기업의 외국인주주 소유비율을 보면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등은 외국으로 넘어갔다"며 "IMF 체제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한국경제의 심장을 내준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구조조정론으로 (1997년 금융위기) 이전의 경제성장과 구조조정 이후의 저성장을 설명할 수 없다"며 "이런 생각(구조조정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선진국에서 촉발된 글로벌금융위기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금융위기 때) 고금리 정책을 폈지만 선진국들은 제로금리, 양적완화 등을 통해 돈을 풀었다"며 "한국에겐 '대마불사(大馬不死)'를 타파하라고 했으면서 자신들은 다 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98년만 봐도 '무역흑자를 통해 금융위기를 극복하자'는 김 전 회장의 말이 맞았다"며 "연초 정부는 무역흑자 28억달러를, 김 전 회장은 500억달러를 전망했는데, 실제 416억달러 흑자가 났다"고 설명했다.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선 "정부관료와의 갈등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얽힌 드라마"라고 표현했다. 신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정부관료와 (상반된 주장을 편) 김 전 회장을 경합시킨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정부관료들이 더 강하게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햇볕정책이 성공하려면 미국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했는데, 1998년 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5대 재벌 개혁이 부진하다'고 말할 정도로 구조개혁을 독촉했다"며 "그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이 대우의 손을 놓는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에 앞서 김 전 회장은 "사업을 하는 동안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제조업이 강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런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 잘못된 구조조정으로 제조업 투자가 위축되고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을 믿고 적극적으로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며 "학생 여러분들도 개인의 발전과 함께 나라의 발전도 마음에 담아주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당초 김 전 회장은 이날 강연의 참석자가 아니었으나, 본인의 요청으로 강연자로 나섰다. 김 전 회장은 전날까지 독감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