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발목 잡힌 조선의 천재

그는 천재 소년이자 개구쟁이였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이 대학생과 학문적 토론을 벌일 정도였다. 그는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큰 형수 밑에서 자랐다. 목욕하기를 싫어해 날마다 도망치는 바람에 머리에는 이와 서캐가 바글바글했고, 몸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었다.

두물머리(양수리)가 가까운 남양주 두릉의 그의 생가는 예나 지금이나 절경이다. 천재 소년은 절경 속에서 빼어난 시심(詩心)까지 얻었다. 어려서 앓은 홍역으로 오른 쪽 눈썹 사이에 곰보가 생기면서 눈썹이 3개가 된 소년, 그가 열 살 때 그 동안 지은 시를 모아 처음으로 낸 시집의 이름은 ‘눈썹이 3개’라는 뜻에서 삼미자집(三眉子集)이었다. “삼미자가 부끄럽지 않으냐?”라는 부친의 물음에 “얼굴에 나타나 있는데 어찌 숨기겠습니까?”라 대답했던 소년, 그가 바로 정쟁으로 발목이 잡힌 조선의 개혁가 ‘다산 정약용’이었다.


다산은 “나는 유교학설을 말하지 않는다. 유익함이 없기 때문이다”는 성호 이익의 유고를 읽으며 그를 뒤따르기로 결심한다. ‘누구도 이 어둠을 밝혀 줄 수 없다.(중략) 뭇 바보들이 바보 같은 사람을 받들면서 왁자지껄 다 함께 받들게 한다. 순박한 옛 풍속을 지녔던 단군 세상만도 못한 것 같구나’라 한탄했다. 그에게는 “누가 들으면 어떤가,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큰소리로 외치는 기개가 있었다.

다산은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진보적 청년들의 출세지상주의자라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를 준비한다. 18세에 과거에 응시했고, 19번 이상을 떨어졌다. 기득권 세력을 위한 과거시험의 부정부패가 만연한데다 그의 답안지는 기계처럼 작성하는 ‘모범 답안’과도 거리가 멀었다.

마침내 인재를 갈구하던 젊은 정조의 눈에 그가 띄었다. 1783년 4월 11일, 30대 초반의 정조와 생원에 갓 합격한 20대 초반의 정약용 간에 창덕궁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조선의 엘리트 코스 성균관 생활이 시작됐다. 정조는 정약용을 눈 여겨 지켜봤다. 노론의 견제를 뚫고 그를 대과에 급제시키고자 좌의정 채제공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 28세, 10년 만의 급제였다.


정약용의 시대가 왔다. 개혁과 충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그에게 수 없는 태클이 들어왔다. 몰입해 달리던 그는 그때마다 넘어져 상처를 입었다. 10년 후 정조가 떠났다. 10년의 두 배에 이르는 19년의 유배 생활이 시작되는 지점, 조선의 천재는 또 다시 못난 조선의 절망과 싸워야 할 모양인데 책은 여기서 멈춘다.

◇청년 다산 절망을 경영하다=차벽 글?사진. 희고희고 펴냄. 432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