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 톡톡]“맙소사!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데”

전날까지만 해도 친구들하고 호기롭게 떠들던 아들이었다. 육군에 3번 해군에 한번 떨어지자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던 놈이 공군 입영 통지서를 받고는 얼굴이 잠시 굳어지더니 며칠 후에는 여기저기 입대한다고 떠들고 다녔었다. 여행도 3-4차례 다녀오고 환송 자리가 연일 이어진 것도 같았다. 그 아들이 피곤한 지 진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휴지처럼 널브러져 잔다.


교육 사령부 안에는 사람들이 넘쳤다. 부모, 친구 애인 그리고 입대하는 빡빡머리 당사자들 수천 명이 운동회 같은 술렁임으로 교장을 가득 채웠다. 내가 입대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 교육장 스탠드 너머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열병하는데 세상 같은 똥 냄새가 꽤나 속을 긁는다. 아들을 죄인 아빠 눈으로 힐끔거려본다.

아직도 전화는 여전히 울리고 아들은 큰 소리로 떠들지만 전화가 끝나면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긴장한 표정이다가 불쑥 중얼거린다. “맙소사! 이게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처음엔 나도 ‘그렇지, 맙소사지?’ 하다가 이 녀석이 계속 “맙소사! 아, 싫다.” 중얼대니 나도 속으로 대꾸한다. ‘맙소사! 너 사람 되라고 만든 2년 의식이야 이놈아.’

아들에게 잘 지내라고 쓴 종이비행기를 접고 훈련 중에 전달한다고 해서 엽서도 썼다. 요즘 군에 대해 불안해하는 부모들을 위해 군에서 꽤 신경을 쓴 모양. 입소식이 진행되는 중에 나와 막내는 아들을 향해 그리고 형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부모들이 날리고 연인이 날리고 친구들이 날린 종이비행기가 낮고 어지럽게 교장을 향해 날아간다. 결국은 흘러갈 시간처럼 결국은 떠나갈 마음처럼.

그리고는 구령에 맞춰 부모님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하는 천 명 아들들의 큰절을 받았다. ‘맙소사! 저 짐승들이 큰절을.’ 아내를 봤다. 눈가에 살짝 이슬. 아들의 서너 달 게으름에 꽤나 속을 끓이던 아내였다. ‘결국 자기도 엄마인 게지’ 나는 멀고 많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 놈이 있을 곳을 향해 미련처럼 롱 샷 사진을 찍었다. 한 방… 또 한 방.


군에 간다고 휴학하고 아침 12시까지 자던 웬수 같은 놈이었는데 아침잠을 못 자서 이젠 어떡하지? 매사 불만이 많던 놈이라 그 버릇 못 버리면 조교들에게 얻어맞지는 않을 런지. 한국에 남자로 태어난 거, 여전히 군 비리와 사고가 많은 한국 군대에 간다는 거, 평범한 아버지를 둔 거, 나름 네트워크도 넓다면서 아들 군대 자리를 부탁할 요량도 전혀 없는 무신경한 아버지의 아들인 거, 가기 전날도 조촐하게 별말 없이 가족끼리 식사로 끝낸 거… 이런 거에 녀석은 속 울화통을 터트리지는 않을 런지.

‘그래 원망해라. 터트려라. 30년 전 아빠도 그랬었으니… 그런데 그래도 별로 달라지진 않을 거야. 인간들이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남의 땅 따먹기에 여전히 골몰하고 어깨 완장을 남을 괴롭혀도 되는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한. 근데 너 알아? 아빠 군대 갈 때 너희들만은 이런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기를 꿈꿨던 거. 그리고 30년이 지났는데 맙소사! 이거 봐. 뭐가 달라진 거야? 종이비행기 날리는 거 빼고는. 이렇게 하사관들이 맥심커피 타 주는 쇼 빼고는.

그래도 30년 전에 문무대 입소 거부했다고 전방 깊숙한 곳에 끌려간 어느 386을 생각해봐. 그들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았어. 그보다 30년 전에 총 한 자루 달랑 들고 사지로 끌려간 부산의 학도병 생각도 해봐. 너보다 어린 나이였을 거야. 그보다 30년 전에 만주 연해주 산골짜기에 낫 들고 구식 총 들어 죽음이 확정된 출사표를 던진 독립군 임들을 생각도 해봐. 3000년 전 모세가 준 손바닥 땅 지키겠다고 군복입고 총 들고 기는 이스라엘 여학생들도 생각해봐. 좀 덜 억울할 거야. 아빠도 그랬거든. 그러다 보면 2년 간다. 그만큼 깊어진다. 이놈아.’

돌아오는 차 안. 아내는 말이 없다. 차 뒤 칸에 중3 막내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구겨져 자고 있다. 그런데 ‘맙소사! 이놈도 아들. 너도 억울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