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평가법인도 공시지가 감정"…대형사 "보이콧 문책" 반발

국토교통부가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가격 조사·평가 등 부동산 공시업무의 진입장벽을 대폭 낮춘다. 이를 통해 대형 감정평가법인뿐 아니라 중소형 법인들도 관련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감정평가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규제완화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지만 대형 법인들은 지난 8월 표준지공시지가 '보이콧' 논란에 따른 문책성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는 부동산 공시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감정평가법인의 요건을 소속 감정평가사 50인 이상에서 20인 이상으로 완화할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이미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토부는 시행령 개정과 함께 본·지사 설치, 최소 주재인원 등 '감정평가업자 선정기준'에 관한 훈령도 개편할 예정이다. 시행령 개정만으론 중소형 법인들의 부동산 공시업무 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재 13개 대형 법인들만 해온 부동산 공시업무를 전국 감정평가법인 중 절반 이상이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감정평가협회에 따르면 전국 감정평가법인은 총 32곳으로 이중 소속 감정평가사가 20인 이상인 곳은 19곳이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부동산 공시업무 위탁법인 요건 완화는 감정평가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하지만 이번 규제완화를 지난 8월 표준지공시지가 '보이콧'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한 국토부의 문책성 조치로 받아들인다. 당시 업계는 국토부의 표준지공시지가 조사·평가방식 개편에 반대하며 관련 업무 수행을 전면 거부해 파장을 일으켰다.

사상 초유의 보이콧은 국토부와 업계가 앞으로 제도개선 방향에 대해 협의키로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감정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10인 이상 법인도 할 수 있었지만 국토부가 부동산 공시업무의 신뢰성과 공정성, 관리문제 등을 이유로 기준을 높이고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게 하는 등 대형화를 유도한 것"이라며 "이제 와서 원칙을 깨고 역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규제완화로 자칫 부실평가와 이에 따른 공시가격의 신뢰성 저하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공시업무 시즌이 되면 담보평가 등 다른 업무는 거의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업무이기 때문에 규모를 키운 것인데 기준을 낮추면 기존 대형사들마저 쪼개져 중소업체 난립과 부실평가 등 시장이 더 혼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업계의 업무중단 선언 전부터 검토한 것으로 (보이콧 논란과는) 연관이 없다"며 "부동산 공시업무에 영향이 없도록 충분히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