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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일리아스에서 배우는 노년의 지혜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68>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입력 : 2014.11.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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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일리아스에서 배우는 노년의 지혜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을 나갈 때 늘 귀중품 보관 상자에 보물 대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넣어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나이 서른셋에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 제왕이 그토록 책을 사랑했다는 점이 놀랍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알다시피 ‘일리아스’의 기둥 줄거리는 시종일관 치열하게 펼쳐지는 그리스 군과 트로이 군의 공방전이고, 그 주인공은 무적의 영웅 아킬레우스니까.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우스 말고도 위대한 영웅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리스 군에는 지략가인 오디세우스와 용맹스런 장수 디오메데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있고, 트로이 군에는 아킬레우스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헥토르, 트로이 멸망 후에도 살아남는 아이네이스가 있는데, 내가 제일 주목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양군을 통틀어서 가장 나이 많은 장수인 네스토르다.

네스토르는 아가멤논에게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전투에서 빠지는 바람에 그리스 군이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를 젊은 장수들에게 전해준다. 트로이 전쟁과 양상이 비슷했던 필리아 전쟁 때 그가 에레우탈리온과 싸웠던 무용담을 틀려주자 여기에 고무된 아홉 명의 전사가 헥토르와 싸우겠다고 나선다.

트로이 군이 그리스 군의 배로 둘러싸인 진지까지 진격해오자 방벽을 쌓자고 제안하고,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을 때는 정찰병을 보내 적의 동태를 알아보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이 같은 조언을 들은 젊은 장수들은 모두 그의 지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따른다. 그가 파트로클로스를 고취시켜 아킬레우스를 전투에 복귀하도록 설득한 것은 그리스 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니 파트로클로스여, 아킬레우스에게 이 일을 말해보시오. 당신이 설득하면 신의 도움으로 혹시 그가 마음을 움직여 말을 듣게 될지 누가 알겠소? 그러면 그대는 그리스 군에게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소. 당신이 그의 무구를 빌려 입고 싸움터로 나가준다면 트로이 군은 당신을 아킬레우스로 오인하고 도망칠 것이고, 지칠 대로 지친 그리스 군은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오.”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출전했다가 헥토르의 칼에 쓰러지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아무 조건 없이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전투에 나가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그리스 군은 확실한 승기를 잡는다. 네스토르는 이처럼 그리스 군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승전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억의 전달자기도 했다.

무질서를 질서로 되돌리는 그의 능력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는 고리타분하고 참견만 하는 수다쟁이 노인네가 아니라 현명한 상담역이자 지혜로운 권고자였다. 그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 군의 젊은 장수들 역시 그의 경험을 존중한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레스의 장례식 후 열린 경기에서 출전하지도 않은 네스토르에게 가서 그의 나이를 존중해 선물을 준다. 네스토르는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아킬레우스에게 고마움을 전한 뒤 과거 혈기 왕성했던 때를 떠올리며 회한에 젖는다. 그도 젊은 시절 헤라클레스와 대적할 정도로 무용을 떨치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어간다. 세월은 육체의 활기를 빼앗아가지만 지혜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더 가까워지지만 그래서 더 죽음을 무시할 수 있다. 짧은 여생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군사력으로 권력을 얻은 고대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솔론에게 “대체 무얼 믿고 자기에게 그토록 대담하게 반대하느냐”고 물었을 때 솔론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노년을 믿고!”

키케로는 말하기를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둬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다.”

눈부시게 화려했던 가을 단풍도 어느새 다 사라지고 바야흐로 겨울이 시작됐다.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또 한 해가 가는 것이다. 과연 나는 불어난 나이만큼 더 현명해졌을까? 문득 창 밖을 바라보며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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