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부터 종·핸드백까지…회장님들 '수집'하는 이유는?

신철호 임피리얼팰리스호텔 회장의 애장품인 벽시계와 촛대 /사진제공=임피리얼팰리스호텔

아웃도어 업체 회장의 카메라 사랑과 화장품 제조업체 회장의 소에 대한 애정, 종근당 로비에 전시된 650여개 종부터 BBQ의 닭모형 박물관, 시몬느의 핸드백 박물관까지.


최근 김홍국 하림 회장이 해외 경매에서 26억원에 나폴레옹 이각 모자를 낙찰받으면서 기업 오너들의 특별한 애장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인 취미에서 시작한 수집품이 경영 철학을 담은 상징으로 자리잡는가 하면, 기업 이미지를 나타내는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모아 박물관을 세우기도 한다.

◇취미로 시작한 수집에 경영철학 녹였다=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은 카메라 수집광이다. 라이카와 콘탁스, 니콘, 캐논 등 다양한 브랜드의 카메라 2000여대가 집무실과 자택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고교시절 용돈을 한푼 두푼 모아 구입한 클래식 수동 카메라부터 최신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모델까지 갖춰 카메라 박물관을 내도 될 정도다.

카메라 세계에 '과감함'과 '우직함'이라는 비즈니스의 기본이 축약돼 있다는 것이 성 회장의 철학이다. 전자식 카메라에서 다시 디지털 카메라로 과감한 혁신을 거듭해 1등 '니콘'을 누른 '캐논'이 있는가 하면, 우직한 장인정신으로 명품 카메라 자리를 놓치지 않는 '라이카'도 있다.

신철호 임피리얼팰리스호텔 회장은 골동품 가구 수집에 골몰해 있다. 그림이나 조각보다 가구, 시계, 촛대, 다기세트 등을 주로 모아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스위트룸 등에 배치한다. 그의 애장품인 1750년 제작된 프랑스 벽시계는 호텔 이탈리아 식당에, 1890년 그리스에서 만든 탁상시계는 호텔 로비 엘리베이터 앞 장식장에 놓여 있다.


값이 나가는 주요 수집품만 400여점에 달한다. 대학 졸업 후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시작한 골동품 수집 취미가 고풍스럽고 품격있는 유럽풍 호텔 꾸미기로 이어진 것이다.

(왼쪽)종근당 본사 로비에 있는 수백여점의 종들. (오른쪽)박성수 이랜드 회장이 수집한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유격수 '아지 스미스'가 받은 13개의 골든 글러브./사진제공=종근당, 이랜드

◇기업 이미지와 안성맞춤…'잇 아이템'에 꽂혔다=기업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 아이템을 집중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본사 로비에 들어서면 높이 1m, 무게 2.3톤에 달하는 커다란 범종이 있다. 인류의 건강을 기원하는 종근당의 염원을 세상에 전하자는 의미를 담아 성덕대왕 신종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 대종 외에도 소 목에 다는 방울종, 크리스탈로 만든 종, 각종 금속 종 등 650점이 넘는 종들이 로비에 함께 전시돼 있다.

이들 종은 종근당 창업주인 고 이종근 회장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국 등 세계 각지로 출장을 갈 때마다 짬짬이 골동품상과 벼룩시장을 돌며 수집한 것들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이름에 '쇠북종(鐘)'자가 들어가 있어 회사 심볼마크로 종 모양을 쓸 만큼 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지인들도 독특한 종을 구해 이 회장에게 선물하곤 했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닭 마니아로 정평이 나 있다. 토종 치킨 프랜차이즈로 맥도날드를 뛰어넘겠다는 그의 의지만큼 닭 사랑이 지극하다. 평소 닭 패턴이 있는 넥타이만 맨다고. 자신이 모은 5000여점의 닭 모형과 닭 관련 자료 1만2000점을 전시한 닭 박물관도 지었다. 글로벌 1등 프랜차이즈를 넘어서려면 닭에 관한 한 박사가 되고 닭에 대한 사랑도 '넘버원'이 돼야 한다는 평소 철학이 애장품 수집으로 이어진 것이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전세계 명품백의 9%를 만드는 최대 제조업체 오너답게 핸드백을 수집한다. 150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갑과 핸드백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수집품 수백여점을 모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상설 전시관을 열었다. 이곳은 해외명품 업체 관계자나 패션을 전공하는 국내외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방문코스로 통한다.

◇"모으는 것도 투자다"…테마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평소 근검절약하는 경영인으로 잘 알려진 박성수 이랜드 회장은 예술품 경매 시장에서 통 큰 씀씀이를 보인다. 특히 영화관련 소장품이 많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 '황금광 시대'(1925년)에서 썼던 중절모와 대나무지팡이, 조앤 크로포드가 '밀드레드 피어스'(1945년)에서 입었던 의상 등 영화 관련 소장품만 7000여점이다. 아카데미 트로피도 30여점이 있다.

스포츠 스타와 정치인 관련 소장품도 다수 있다.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 선수 60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석판화를 비롯해 196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한 투수 밥 깁슨의 올스타 트로피, 1980년대 메이저리그를 풍미한 라마 호이트의 사이 영 트로피 등이 있다.

마이클잭슨의 스릴러 투어 의상과 존 레논의 기타, 비틀즈 멤버들의 친필사인 등 팝스타 소장품과 캘빈 쿨리지, 빌 클린턴 등 미국 역대 대통령의 자필 편지와 서명도 소장하고 있다. 박 회장이 수집에 몰두하는 것은 테마파크 사업을 위한 포석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모은 수집품이 수만점에 달해 박물관 수십개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