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다시 '부양모드' 결집…이번엔 통할까?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미약한 성장세를 떠받치기 위한 중앙은행들의 행보가 다시 빨라졌다. 중국 인민은행은 2년 만에 기준금리를 깜짝 인하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국채를 매입하는 전면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을 거듭 확인했다. 2년 만에 다시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에서는 일본은행(BOJ)의 경기부양 기조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세계 경제 성장세가 무기력해진 것을 놓고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7년 가까이 이어진 중앙은행들의 경기부양 노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인민은행은 22일자로 1년 만기 예금금리를 0.25%포인트 낮춘 2.75%로, 1년 만기 대출금리는 0.40%포인트 인하한 5.60%로 각각 조정했다. 아울러 금융기관의 예금금리 적용 상한을 기준금리의 1.1배에서 1.2배로 확대했다. 중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2012년 7월 이후 2년4개월 만이다.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소식을 발표한 21일 드라기 총재는 ECB가 제로(0)에 가까운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연설에서 "우리는 계속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가능한 빨리 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이션 전망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회사채나 국채를 매입하는 전면적인 양적완화 시행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풀이했다.

중국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과 맞물린 드라기 총재의 추가 부양 발언이 전해진 21일 미국과 유럽 증시는 일제히 환호했다. 뉴욕증시에선 다우지수와 S&P500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유럽 주요 증시도 1-3%대의 급등세를 연출했다.

인민은행과 ECB의 추가 부양 움직임은 BOJ가 지난달 말 연간 60조~70조엔 규모인 자산매입 규모를 80조엔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추가 부양책을 발표한 지 3주 만에 나온 것이다.

일본이 지난 3분기에 다시 경기침체에 빠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BOJ의 부양기조에는 더 힘이 실리게 됐다. 한 예로 지난 19일 열린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는 10월 때 추가 양적완화에 반대표를 던졌던 4명 가운데 3명이 찬성으로 돌아섰다.

일본의 성장률이 지난 2분기 -7.3%에 이어 3분기에 -1.6%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경기침체)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초 내년 10월로 예정했던 소비세율 추가 인상(8→10%) 시기를 18개월 늦추기로 했다. 또 21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다음달 재신임을 묻는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비세율 추가 인상 연기로 일본 정부의 재정 여건 개선이 어려워진 만큼 BOJ의 출구전략 시행시기도 미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라고 전했다. BOJ가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출구전략을 시행하면 금리가 급등할 수 있고 이는 GDP(국내총생산)의 2배가 훌쩍 넘는 공공부채를 짊어진 일본 정부의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구로다 총재도 지난 19일 회견에서 구체적인 출구전략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FRB가 기준금리 인상시기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윌리엄 리 씨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1일 낸 투자노트에서 FRB가 내년 12월까지는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당초 FRB가 이르면 내년 9월에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봤었다. 리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하방위험이 늘어나고 있다며 FRB 위원들이 최근 두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중기 경제전망을 하향조정한 것을 새 투자노트의 근거로 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아시아와 유럽에서 일고 있는 통화완화 바람이 여러 가지 위험을 동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자산거품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과도한 통화완화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취한 일련의 비상조치가 각국이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된 게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공황기 중앙은행 총재들의 정책 실패를 담은 역작인 '금융의 제왕들'(Lords of Finance)을 쓴 금융역사학자 리아콰트 아메드는 "중앙은행들은 할 만큼 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경제 구조가 매우 비효율적이고 유럽은 금융시스템이 취약하다며 싼 돈을 쏟아 부어봐야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메드는 "서로 다른 문제를 가진 나라들이 단순히 미국의 정책(양적완화)을 베끼려고 한다"며 "전 세계가 중앙은행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